베트남 친선방문 일정 소화, 국가주석ㆍ총리 등 만나… 산업단지ㆍ관광지 시찰 무산
2차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베트남을 방문 중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일 오후 3시30분(현지시간) 베트남 군 의장대 사열을 시작으로 ‘공식친선방문’ 일정을 시작했다. 전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 결렬 이후 약 26시간 만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날 오후 3시30분(현지시간) 예정된 시각에 맞춰 주석궁에 도착한 김위원장은 전날 잠을 설친 듯 피곤해 보였다. 하지만 표정만큼은 차분하고 편안했다. 화동으로부터 받은 꽃다발을 뒤에 대기 중인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에게 넘겼다. 이어 김 위원장은 북한 인공기와 베트남 금성홍기를 양손에 든 학생들의 환영을 받으며 행사장 안으로 들었다. 도중에 학생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기도 했다.
약 15분간 이어진 의장대 사열을 끝낸 김 위원장은 자신보다 마흔 살 많은 응우옌 푸 쫑(74) 당서기장 겸 국가주석의 안내를 받으며 주석궁 환담장으로 들었다. ‘공식친선방문’이지만 북한 최고지도자로서는 55년 만에 베트남을 찾은 만큼 베트남은 김 위원장을 국빈 방문수준으로 예우했다.
이어 베트남 권력서열 2, 3위인 응우옌 쑤언 푹 총리, 응우옌 티 낌 응언 국회의장을 잇달아 면담했다. 베트남은 공산당 당서기장을 정점으로 국가주석(외교, 국방), 총리(행정), 국회의장(입법)이 권력을 분점, 집단 지도체제를 갖추고 있다. 해외 정상이 국빈 방문할 경우 이들 4명의 지도자를 차례로 만난다. 하지만 작년 9월 쩐 다이 꽝 주석 별세 이후 당서기장이 이 자리를 겸하고 있어, 세 차례의 면담으로 정치 지도자 면담 일정을 소화했다.
저녁에는 국제컨벤션센터(ICC)에서 열리는 베트남 지도부의 환영만찬에 참석했다. 만찬에는 김 위원장을 수행한 김영철ㆍ리수용ㆍ오수용ㆍ김평해 노동당 부위원장, 리용호 외무상, 노광철 인민무력상, 최선희 외무성 부상, 리영식ㆍ김성남 당 제1부부장, 현송월 당 부부장 등 북한 최고위급 인사들이 모두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 측에서는 팜 빈 민 부총리 겸 외교장관을 제외하면 대부분 당 고위 간부들이었다.
푹 총리, 응언 국회의장과의 회담은 당초 2일 오전 예정된 일정이었으나 북한 측 요청으로 이날 모두 소화했다. 이는 김 위원장의 베트남 2일 출발 시간을 당초보다 2시간 가량 앞당기기 위한 일정 조정으로 보인다. 북한 지도자로는 55년 만에 베트남을 찾았지만, 전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가진 2차 정상회담이 소득 없이 끝나면서 맥 빠진 상황에서 마무리되는 수순이다.
한편 김 위원장은 1일 오후 베트남 측의 공식환영 행사와 정상회담을 위해 나서기까지 숙소인 멜리아 호텔에 두문불출했다. 김 위원장을 수행한 북한 고위인사들이 앞서 인근 산업단지와 관광지 등을 둘러보면서 이들 지역에 대한 직접 시찰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북미가 비핵화 및 상응조치라는 핵심 쟁점에 대한 이견만 확인하고 공동성명도 없이 헤어진 상황에서, 공개 행보는 부담스러웠던 것으로 보인다.
환영만찬을 마친 후 숙소로 돌아온 김 위원장은 하노이에서의 네 번째 밤을 보낸 뒤 2일 오전에는 바딘 광장 인근 전쟁영웅ㆍ열사 기념비와 호찌민 전 주석 묘에 헌화할 예정이다. 이후 바로 동당역으로 이동, 특별열차편으로 귀로에 오른다.
하노이=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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