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켈리 차관보 北 압박… NPT 탈퇴 등 2차 북핵 위기 발단
북미 비핵화 협상이 ‘우라늄 농축 시설’ 문제로 깨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7년 전인 2002년에도 북미는 고농축우라늄(HEU) 문제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며 제네바 합의 파기와 2차 북핵 위기라는 전철을 밟았었다.
1일 외교가에 따르면 북한의 HEU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건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평양을 방문하면서였다. 당시 켈리 차관보는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을 만나 ‘HEU를 이용한 핵개발 프로그램을 실토하라’고 압박했다. 이에 강 1부상은 “우리는 HEU보다 더한 것도 가질 수 있다”고 맞받아쳤다.
강 1부상의 말에 미국 정부는 ‘북한이 HEU 프로그램을 인정했다’고 몰아갔다. 이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대북 중유 공급 중단→북의 핵동결 해제 선언→북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 등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른바 2차 북핵 위기의 시작이다. 1994년 북한의 핵 동결과 미국의 중유ㆍ경수로 제공을 맞바꾼 제네바 합의도 휴지조각이 됐다.
북미가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자 국제사회가 중재에 나섰다. 2003년 베이징에서 북ㆍ미ㆍ중 3자회담이 열렸고, 이는 한국, 일본, 러시아가 참여하는 6자회담으로 발전했다. 6자회담은 2005년 9ㆍ19 공동성명을 도출하며 2차 핵위기를 종결시켰다. 당시 북미는 핵무기 폐기와 NPT 복귀, 대북 에너지 제공 등을 주고받았다
28일 2차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도 HEU 문제가 단초가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협상 후 기자회견에서 “영변 핵 시설보다 플러스 알파(HEU 시설)의 폐기를 원했다” “우리가 (HEU 시설을) 알고 있었던 것에 북한이 깜짝 놀란 것 같다”고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영변 핵 시설 폐기 대가로 경제 제재 해제를 요구했지만, 미국은 우라늄 핵 시설의 신고와 폐기까지 거론하며 결국 빈손 협상으로 끝났다는 것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북한이 다시 핵실험을 재개하거나 6자회담으로 협상의 틀이 변할 가능성은 적다고 보고 있다.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나 김 위원장 모두 판을 깨서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양측이 냉각기를 가진 뒤 3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협상이 재개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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