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전 미ㆍ소 핵무기 담판 결렬… 1년 뒤 합의 도출 기여 평가
냉전이 한창이던 1986년 10월, 북유럽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장 서기장이 마주 앉았다. 전 세계를 휘감고 있던 핵 전면전 위험을 감소시키려는 자리였다. 상호간의 전략핵무기를 무려 50%나 감축하는 등 상당히 전향적 내용이 오갔으나 소련이 주장한 미국의 전략방위구상(SDI) 폐기 요구를 레이건 대통령이 거절하는 바람에 회담은 최종적으로는 결렬됐다.
그러나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미소 양국이 상대방의 협상카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는 점이다. 추후 있을 회담의 대응책도 세울 수 있어서 실패했음에도 성공한 회담이라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이후 1년이 지난 1987년 12월 중거리핵전력조약(INF) 체결도 레이캬비크 회담의 결과물이나 다름없다. SDI 계획 포기 여부에 대한 결정 없이 이뤄낸 레이건 전 대통령의 성과였다.
미국 언론들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합의 없이 결렬된 2차 북미 정상회담을 33년 전 레이캬비크 회담의 재연으로 이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폭스뉴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뿐만이 아니라 미국의 아시아 지역에서 현존하는 전략적 위협인 중국에도 메시지를 던졌다”고 분석했다. 미중 무역협상이 진행중인 와중에, 트럼프가 양보할 수 있다고 오판할 수 있는 중국 측 협상단도 트럼프의 진의를 알 수 있게 됐을 거라는 이야기다.
폭스뉴스는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 전 대통령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앙적인 상황’을 뛰어 넘어 북한에 대해 이미 승기를 잡았다”고 진단했다. 이 매체가 친(親)트럼프 성향이기는 하지만, 지난 달 28일 북미 회담 결렬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이 미사일 발사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는 점에서 인정할 만한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1일 트위터에 글을 올려 “우리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그들은 우리가 받아야만 하는 것들을 서로 알게 됐다”며 “관계가 매우 좋은 만큼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지켜보자”는 입장을 남겼다.
한편 레이건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레이캬비크 회담 이후 상승 추세를 보였다. 미국인들이 레이건 전 대통령의 회담 태도에 대해 긍정적 지지를 보냈기 때문이다. 폭스뉴스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서도 미국인들이 같은 지지를 보낼 것”이라고 희망적 예측을 내보냈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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