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러 개의 얼굴을 지니고 산다. 자애로운 얼굴, 걱정하는 얼굴, 뿔난 얼굴, 시큰둥한 얼굴…. 수십 개의 얼굴들은 때와 장소에 따라 민첩하게 제 존재를 드러내며 주어진 역할을 수행한다. 그들 중 주연급을 꼽으라면 단연 미소 짓는 얼굴일 것이다. 미소는, 이를테면 사회적 동물인 우리가 장착해야 할 필수 아이템이다. 별다른 말없이 살짝 웃는 것만으로 동서양 어디서든 내가 원하는 많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적지 않은 체험을 통해 나는 터득했다.
“어우, 꼴 보기 싫어. 이 집은 다 좋은데 쟤 말이야, 눈깔 내리깔고 있는 저 얼굴 땜에 입맛까지 떨어진다니깐.” 식당을 나오면서 친구가 성질을 냈다. 피식 웃었지만 나 역시 그 청년과 눈을 마주친 기억이 거의 없었다.
보름에 한 번쯤 들르는 이 식당은 우리가 자주 걷는 산책로 근처에 자리 잡은 태국 음식점이었다. 단출한 공간, 인근 식당에 비해 20퍼센트 가량 싼 가격, 무엇보다 모든 음식이 혀에 착착 감기게 감칠맛이 있었다. 다만 혼자 서빙을 담당하는 청년의 무뚝뚝한 손님 응대 방식은 나로서도 조금 신경 쓰였다. 혹시 내가 무의식중에 청년을 불쾌하게 한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한번은 쌀국수를 먹으며 그에게 신경을 곧추세웠다. 청년은 음식을 먹고 나가는 등산객들이 던지는 “이 집 음식 맛있는데.”란 말에도 별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태생적으로 과묵하거나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 탓이겠거니 짐작했다.
며칠 전, 쌀국수를 먹고 싶어 하는 10대 후반 조카 두 명을 데리고 그곳에 갔다. 작은 식당 내부의 감각적인 인테리어를 보자마자 아이들은 탄성을 질렀다. 청년은 봄 햇살처럼 따사로운 미소로 아이들을 안내했다. 혹시 조카들에게도 뚝뚝하게 굴까봐 혼자 걱정하던 나는 안도했다. 청년이 두 조카와 나에게 차례로 메뉴를 건넸다. 주문을 받을 때도, 음식을 테이블에 놓으면서도 그는 조카들과 눈을 맞추며 웃었다. 수시로 이쪽을 살피며 행여 반찬이 모자라지 않는지, 더 필요한 건 없는지 챙기는 그의 모습은 딱 자상한 큰오빠의 눈길이었다. 어쭈구리! 청년의 돌연한 변화를 알 리 없는 조카들은 새 메뉴가 나올 때마다 감탄사를 흘리며 청년에게 눈인사를 하고, 나는 무심함을 가장한 채 이 낯선 광경을 바라만 보았다.
이튿날. 업무 차 회사에 들른 20대 후반 친구들과 점심을 먹다가 이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들은 한 친구가 의외의 말을 했다. “손님들하고 눈을 안 맞추는 건, 일종의 방어막이에요.” 자기 역시 편의점과 식당 알바를 할 때 친구들로부터 유사한 충고를 여러 번 들었다고 했다. 손님에게 화내지도 친절하지도 말 것, 무엇보다 손님과 눈을 마주치며 웃지 말 것. “이상한 사람들 엄청 많아요. 특히 나이 좀 있는 어른들, 진짜 조심해야 돼요.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반말 듣는 건 일상이고요, 웃기지도 않은 농담에다 아무 때나 벌컥벌컥 화를 내고 욕을 퍼붓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데요. 그런 사람들한테 크게 몇 방 맞다보면 정말 ‘현타’ 와요. 아, 내가 왜 이러고 사나. 언제까지 이런 거지같은 생활을 계속해야 하나. 작은 식당에서 혼자 서빙 하려면 아마 그 청년 무척 조심스러울걸요.”
짐작조차 못한 이야기. 이만하면 젊은 세대를 제법 이해한다고 자부하며 살았는데, 오히려 내가 ‘현타’ 맞은 기분이었다. 미소조차 쉽지 않은 세상이라니…. 당장 뭐라도 하고 싶었던 나는 그 식당에 다시는 안 간다고 장담한 친구를 살살 꼬드겼다. 하필 그곳의 팟타이가 너무 먹고 싶다면서. 문이 열리고, 눈길이 마주쳤다. 나를 발견한 청년이 단골손님 대하듯 활짝 웃었다. 봤지, 저 예쁜 미소? 우쭐거리는 나를 훑으며 친구는 코웃음만 쳤다.
지평님 황소자리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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