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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74명 유골, 81년 만에 고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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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74명 유골, 81년 만에 고국으로

입력
2019.02.28 17:54
수정
2019.02.28 21:0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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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 조선인의 유골 74위가 81년 만에 돌아온 28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앞에서 노제가 진행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 조선인의 유골 74위가 81년 만에 돌아온 28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앞에서 노제가 진행되고 있다. 고영권 기자

“북해도 땅이 얼마나 좋길래 한번 간 님은 왜 아니오나. 고향산천을 찾아왔건만 반겨주는 이 어디 갔나.”

28일 오후 해외여행객으로 북적거린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 상여가와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상복 차림의 명창이 선창하자 뒤따른 소리꾼들이 “아이고, 아이고 원통하다”며 곡소리를 이어갔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으로 고향을 떠나 일본에서 숨진 74명의 유골은 흰 보자기에 싸인 채 후손들의 품에 안겨 고국 땅을 밟았다. 눈을 감는 순간까지 애타게 그리워했을 고향 한반도 그림이 영정사진을 대신했다.

남과 북이 협력한 유골봉환공동사업이 결실을 맺어 일본 오사카 통국사에 모셔져 있던 강제동원 희생자 유해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1938년 일제가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해 조선인들을 해외로 끌고 나간 지 81년 만의 귀국이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는 이날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입국장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앞에서 봉환된 유골 74위에 대한 환향식과 노제를 열었다.

유골이 처음 수습된 곳은 일본 주고쿠 지방의 오카야마현이다. 민화협에 따르면 74명 중 해군부대 군속으로 징집됐던 4명을 제외한 70명이 오카야마현 소재 탄광이나 조선소로 끌려가 강제노역에 시달린 노동자다.

일제 강제징용 희생자 유골 74위가 28일 오후 한반도 그림과 함께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봉환되고 있다. 맨 앞에 선 영화배우 박성웅은 봉환 취지를 듣고 자진해 환향식과 노제 등에 참여했다. 뉴스1
일제 강제징용 희생자 유골 74위가 28일 오후 한반도 그림과 함께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봉환되고 있다. 맨 앞에 선 영화배우 박성웅은 봉환 취지를 듣고 자진해 환향식과 노제 등에 참여했다. 뉴스1

광산 사고나 연합군의 공습, 질병으로 숨진 뒤 방치된 유골을 수습한 건 오카야마현 불교회 소속 신도와 승려들이었다. 이들이 1958년부터 1970년까지 수습한 200여 위 중 가족을 찾지 못한 무연고자 유골이 1974년 일본 오사카시 텐노지구의 통국사로 옮겨졌다. 남과 북측 민화협은 지난해 6월부터 통국사의 유골 공동 봉환을 추진했다.

봉환된 희생자 74명은 제주 애월읍 선운정사에 안치된다. 한국 이름까지 확인된 희생자는 41명이고 14명은 일본식 이름만 파악됐다. 19명은 신원이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민화협은 정부에 유골 신원 및 유족 확인을 의뢰할 방침이지만, 세월이 흘러 유족을 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김홍걸 민화협 상임의장은 “유족을 찾지 못한 유골은 비무장지대(DMZ)에 조성하는 평화공원으로 옮겨 남북 동포가 함께 참배하는 방안을 북측과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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