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파인은 수용” 입장… 정부 “엄정 대응, 돌봄공백 최소화”
개학 4일 앞 ‘집단 휴원’에 학부모들 “무책임 극치” 발 동동
국가관리회계시스템 에듀파인 도입 등을 두고 연일 정부와 대치해 온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새 학기 개학을 무기한 연기하기로 했다. 사립유치원의 사유재산을 침해하는 등 정부의 입장변화가 없다는 게 그 이유다. 개학을 불과 나흘 앞둔 시점에 사실상 ‘집단 휴원’ 결정을 내리면서 맞벌이 부부 등 학부모들의 보육대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유총에 대해 교육당국은 물론 학부모들은 “아이들의 학습권을 볼모로 사립유치원들이 횡포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교육당국은 실제 유치원 개학이 연기될 경우 주변 국공립유치원 등과 연계해 ‘돌봄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한유총은 28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유총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적폐몰이∙독선적인 행정에 대해 2019학년도 1학기 개학일정을 무기한 연기하는 준법투쟁을 전개한다”고 밝혔다. 이어 “교육부를 상대로 그 동안 끊임없이 대화요구를 했고 집회를 통해 주장을 전달했음에도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대화를 거부하고 사립유치원 마녀사냥을 멈추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한유총은 “사립유치원에 맞지 않은 시스템임에도 불구하고 에듀파인은 수용하겠다”며 입장 변화를 보였다. 폐원의 자유 등 사유재산 인정을 요구해 온 한유총이 마치 회계 투명성 자체를 반대하는 것처럼 비춰지고 있다는 게 이들이 밝힌 에듀파인 수용 배경이다. 한유총은 “우리의 정당한 요구가 에듀파인 도입논란에 묻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며 “폐원 시 학부모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하는 등 정부가 발표한 유아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이야말로 사유재산인 유치원의 사용, 수익, 처분권을 전면적으로 제한하는 폭압”이라고 주장했다.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유치원 공공성 강화의 일환으로 에듀파인 도입 의무화와 폐원 시 학부모 동의 기준 신설 등을 골자로 한 유아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한유총은 전체 회원 중 약 60% 이상이 개학 연기에 동참한다고 주장한다. 한유총 회원이 약 3,300여 곳인 점을 고려하면 최소 1,900여 곳의 유치원이 개학을 미룰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같은 ‘최후통첩’에 한유총에 대한 교육당국, 학부모들의 시선은 더욱 싸늘해졌다. 에듀파인 수용 의사를 밝힘으로써 마치 통 큰 양보를 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지만, 최악의 시나리오인‘개학 연기’ 카드를 꺼냄으로써 실제로는 정부를 상대로 갈 데까지 가 보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한유총의 발표가 나온 직후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한유총 소속 회원 유치원에 개학연기를 강요하는 것은 공정거래법 위반”이라며 “개학 연기에 참여한 유치원에 대해 4일부터 시정명령과 행정처분, 우선 감사를 실시하고 감사 거부 시 형사고발 조치하겠다”며 엄정대응을 예고했다.서울시교육청도 “유치원의 학사일정은 한유총이 결정할 사항이 아니다”라며 설립취소 등 법적 절차를 고려한다는 방침이다. 교육부는 개학 연기 시 국공립유치원 등과의 공조를 통해 긴급돌봄체제를 가동해 돌봄공백을 최소화할 방침이다.
새 학기부터 아이를 유치원에 보낼 준비를 하던 학부모들은 혼란에 빠졌다. 학부모 송유경(36)씨는 “지금도 봄방학이라 남편과 번갈아 휴가를 쓰며 아이를 돌보고 있는데 개학을 안 한다니 기가 찰 뿐”이라고 강하게 불만을 토로했다. 올해 유치원에 입학하는 아들(6)을 둔 한 학부모는 “대책도 없이 유치원을 운영하지 않는다니 무책임의 극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유총의 결정에 당장 ‘강제 휴직’을 하게 된 사립유치원 교사들도 불만을 토로했다. 서울의 한 사립유치원 교사 A(26)씨는 “지난달 25일궐기 때도 참여하지 않으면 무단결근으로 처리한다는 원장의 강압에 어쩔 수 없이 참여했다”며 “개학이 연기되면 근무도 못하고 또 비슷한 집회에 끌려나가게 될까 걱정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유총은 “사립유치원이 법정 수업일수인 180일보다 더 많은 230일간의 수업을 해 왔다”며 개학연기가 ‘합법’이라는 주장까지 내놨다. 이에 대해 교육시민단체 좋은교사운동은 “아이들을 볼모로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주장을 펼치는 것은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반교육적 행태”라며 “사유재산 침해를 운운하며 유아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거부하고 집단행동에 나선 것은 교육기관임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도 “학교로서의 지위를 망각한 채 아이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불법행위”라며 비판에 가세했다.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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