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전날 저녁에 이어 28일 오전에도 겉으로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김 위원장이 미국 측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에 협상 결과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졌다. 그러나 두 정상이 정작 중요한 내용상 합의는 이루지 못하면서, 예정된 업무오찬과 공동 서명식을 취소하고 예정보다 일찍 협상장을 떠났다.
◇예정보다 짧게 끝난 단독회담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28일 오전 8시57분(한국시간 10시 57분) 단독회담을 앞두고 카메라 앞에 앉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관계가 아주 특별해졌다. 김 위원장과 북한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경제적으로 다른 국가들보다 우월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합의에 자신이 있는가”라는 워싱턴포스트(WP) 기자 질문을 받고 “예단하지 않겠다. 직감으로는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단독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과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은 밖에서 함께 이동하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였다.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도 회담장 밖에서 대기하며 주변을 확인했다. 단독회담은 본래 40분쯤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이보다 이른 30분 만에 양측 통역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두 정상은 폼페이오 장관ㆍ김영철 부위원장과 합류해 짧은 대화를 나눈 후 다시 확대 정상회담장으로 들어갔다.
◇김 위원장, 미국 언론 질문에 답변 이어가
확대 정상회담에는 미국 측에서 폼페이오 장관,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참석했고 북한 측에서는 전날 만찬과 마찬가지로 김영철 부위원장과 리용호 외무상이 배석했다.
양측은 확대 정상회담 현장을 잠시 공개하지 않다가 오전 11시쯤 기자들을 방에 들였다. 미국 언론의 질문은 트럼프 대통령보다는 김 위원장 쪽으로 향했다. “비핵화 의지가 있느냐”는 질문에 김 위원장은 “그럴 의지가 없다면 여기 오지 않았을 것”이라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받아 “좋은 답변이다. 지금까지 들은 것 중 가장 훌륭한 답변일 것”이라고 말했다. 평양에 미국의 연락사무소를 설치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좋은 생각”이라고 했고 김 위원장도 “환영할 만한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질문 도중 리용호 외무상이 ‘기자들을 내보내는 게 어떻겠냐’며 질문을 제지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김 위원장은 자연스러운 답변을 이어갔다. 미국 언론은 “김 위원장이 서구 언론의 질문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많은 질문에 응했다”고 전하며 흥분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비핵화의) 구체적인 절차를 밟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지금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오늘 종전선언을 하느냐”는 질문에 “하루나 이틀 안에 모든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즉답을 피했다.
◇ 업무오찬 취소, 분위기 급변
김 위원장이 “충분한 시간을 줬으면 좋겠다. 우리는 1분이라도 귀중하니까”라고 말한 후, 기자들은 회담장에서 벗어나 오찬장에서 11시55분부터 시작되는 업무 오찬을 기다렸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양측은 예정된 시간에도 오찬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의문 속에 35분이 지난 후,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이 미국 취재기자단에게 “계획이 변경됐다”고 알려 왔다. “회담은 30분 정도 이어질 것”이라며 “오찬은 취소됐고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예정보다 2시간 빠른 오후 2시부터 시작된다”고 밝혔다. 원래대로라면 오후 2시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합의문 공동 서명식이 진행되는 시점이었다.
오후 1시쯤부터 호텔 밖에서는 양측의 차량 행렬이 분주히 출발을 준비했다. 잠시 후 30분쯤 두 정상은 각자의 숙소로 떠났다. ‘하노이 합의’가 무산됐다는 게 확실시되는 순간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오후 2시 JW매리엇 호텔에 이르기 직전 백악관은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지금으로서는 아무런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양측은 향후 다시 만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