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생 산 성 박 사(최종)
길브레스 저
오일로(吳一路) 역
응원단장
단발사건에서 아버지는 패배했기 때문에 앞으로는 아이들이 신장구(身裝具;*장신구)를 바꿀려고(*바꾸려고) 할 때에는 강력히 반대해야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안과 아네스틴은 좀처럼 아버지의 의도에 순종하려고 하지 않았다.
안은 알바이트(*Arbeit)를 해서 번 돈으로 명주양말, 짧은 다불(*double)양복, 얇은 즈로-스 따위를 사들여 가족들에게 자랑하면서 보이고
“나는 신비주의는 아냐. 전부를 구경시킬 테야. 만일 아버지가 집에서 이것을 입지 못하게 하면 학교에 가는 도중에서 갈아입을 테야. 이제는 긴 즈로-스는 절대 입지 않을 테야.”
“안돼 안돼. 그 따위 것은 당장 가게에 돌려주고 와. 그 따위는 보기도 싫어. 집에서는 절대 입지 못해.” 하고 아버지는 호령을 하신다. 아버지가 짧은 즈로-스를 어깨에 대어보니, 허리띠 있는 곳까지밖에 오지 않았다. “요즘 여자들은 정말 이런 즈로-스밖에 입지 않느냐?”고 의심스럽게 물으면서 곧 가게에 돌려보내라고 소리를 지른다.
“싫어요.” 하고 안은 고집을 부리면서 “이것은 전부 내가 일을 해서 번 돈으로 산 거얘요(*거예요). 꼭 입어야겠어요. 우리 반에서 나 혼자만 긴 즈로-스는 정말 못 입겠어요.”“단추를 달 곳도 없을 만큼 등 없는 즈로-스보다는 좋겠다(*낫겠다). 아버지는 너의 동무들이 전부 이러한 벌거숭이와 다름없는 즈로-스를 입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아.”
“어째서 이 즈로-스를 반대하시는 거애요. 그것만은(*이건) 보이지가(*속이 비치지가) 않아요, 아버지.”라고 안이 말한다.
“물론 그거야 보이지 않겠지만, 그 대신 보이는 것이 있지 않아. 내가 걱정하고 있는 것은 이것이야(*그거야).”
“학교에서 짧은 즈로-스를 잊지 않는 것은 안과 나 이외에 또 한 사람 있어요(*뿐이에요). 믿지 못하시면 학교에 와보세요.” 하고 아네스틴이 조언을 한다.
“가지 않아도 좋아.(*갈 필요 없다). 거짓말이라고는 하지 않았으니.” 하고 아버지는 얼굴을 붉힌다.
“발을 걸치거나 바람이 불 때 속이 환하게 보이는 것이 망칙스러운(*망측스러운) 것은 참는다고 하드래도(*하더라도), 몸이 냉해져서 폐렴이나 걸려 죽어버릴까 바(*봐) 걱정이다.” 라고 아버지는 중얼거린다.
“또 너희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한다면 다음에는 분(粉)을 바르고 싶어 할 거야.”
“요즘은 누구나가 다 화장을 해요. 분을 바르지 말라고는 아무도 말하지 않아요.”라고 아네스틴이 말한다.
“무슨 말을 함부로 하는 거야.” 하고 아버지는 다시 성을 내신다.
“이 집에는 분 바른 사람은 출입 엄금이야. 지금 명백히 선언할 터이니, 단발과 벌거숭이 즈로-스는 허락해 주지만 분 바르는 것만은 절대 엄금이다. 알았니?”
“네 좋아요.”
“하이힐과 끝이 뾰족한 구두도 위법이다. 발병이 나서 치료비가 많이 드는 것은 딱 질색이다(*질색이니까).”
안과 아네스틴은 반(半)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더 좋다고 생각하고, 화장이나 구두 문제는 이상 더(*더 이상) 끄집어내는 것을 삼가하기로 했다. 우선 단발이나 짧은 스카-트(*Skirt), 얇은 즈로-스 등에(*등이) 아버지의 눈에 익어서 신경을 쓰지 않게 된 후에도(*후라도) 늦지 않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뒤 안과 아네스틴이 어머니에게 화장과 구두 문제를 아버지에게 잘 부탁해달라고 하니, 어머니는 “얌전한 게집애(*계집애)는 분 따위는 필요없으리라 생각해요.”
“그렇지만 코등(*콧등)에 죽은깨(*주근깨)가 보이는 것이 더 좋다는 말씀은 아니지요?” “아니 그것이 자연스럽고 더 좋아. 그리고 하이힐은 아버지가 이곳저곳에서 피로를 방지하자고 주장하시는데, 너희들이 그것을 신고 발을 피로하게 할 수는 없지 않니?”
아버지는 게집애들이 비밀히(*비밀리에) 분을 바르는 것을 엄중히 경계하시었다. 그래서 게집애들이 예뻐 보일 때에는 더욱 의심을 하시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분이나 향수냄새가 나지는 않을까 하고 쿵쿵거리시었다(*킁킁거리시었다).
아네스틴이 왼종일(*온종일) 바깥에서 놀고 얼굴을 붉히고 집에 돌아와서 저녁밥상에 앉으니, “아가씨 이리 좀 오세요.”라고 말한 다음 큰 소리로 “아버지는 분을 바르지 말라고 주의하였다.(*주의를 줬다.) 얼굴을 잘 보여라.(*똑바로 해봐.) 요즘 너희들은 아버지를 검둥이의 광고인형만치도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애(*같아). 남자도 이 집에서는 머리에 기름을 번지르하게 바르고 회색 후란넬 즈봉(*flannel ]jpon)을 입지 않으면 훌륭하다고 인정하지 않은 것 같구나.”
“화장은 하지 않았어요.” “멀!하지 않았어?(*안 하긴 뭘 안 해!) 속일려고 해도 속지는 않아.(*안 속아.) 이번만은 공갈이 아니고 진짜로 너희들은 수도원행이야.”
“12휘-트(*feet) 담의 수도원이애요? 또는 10휘-트쪽이애요?”
“뻔뻔스러운 게집애들이로군.” 그리고 아버지는 손수건을 끄집어내어 “여기 춤(*침의 사투리)을 좀 발라봐.” 아버지는 손수건 젖은 곳으로 아네스틴의 뺨을 문질러보았다.
“응, 안심이야(*다행이군). 내 잘못이야(*내가 잘못 봤다). 그렇지만 그러한 일이 있을런지도(*있을지도) 모르니까…. 절대로 안돼. 알았어?”
안이 학교에서 돌아와 처음으로 땐스(*dance)에 초대를 받았다고 기뿐드시(*기쁜 듯이) 보고를 하니, 아버지와 어머니는 다 같이 매우 기뻐했다.
“나도(*저도) 지금 유행하고 있는 옷차림만 한다면 만사가 잘 통해서 대학생들 사이에도(*사이에서도) 평판이 좋아진다고 하지 않았어요?” 하고 떠들어대었다.
“죠·스켈-ㄹ즈(*Joe Scales)가 내주 금요일에 땐스 파-티(*party)에 가자고 초대를 해주었는(*해준) 거얘요.”
“그것 참 좋은 일이군.” 하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좋아했다. “그런데 그애는 미남자냐?” “별로 미남자는 아니지만, 그이는 응원단장이며 차를 가지고 있어요.”
“두 가지나 훌륭한 조건을 갖추고 있군.” 하고 아버지는 빈정거리면서 머리를 흔들고 탄식을 하시면서 “정말 세상이 어떻게 되려는지? 도모지(*도무지) 알 수 없군. 금요일이라고 했지?” 하고 말하면서 수첩을 내어 적어 넣었다. “좋아, 걱정 없어.” “무엇이 걱정 없으세요, 아버지?” “안이 이상스러운 표정을 했다.
“틀림없이 나도 땐스에 갈 수 있다는 거야. 혹시 너는 그 응원단장과 단둘이서 밤에 외출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겠지?”
“저런! 아버지.” 안은 벌서(*벌써) 울상이 되어서 말한다. “그런 일을 해서 모든 일을 다 깨뜨려버리지는 않겠지요. 그이가 어떻게 생각하실까!”
“그 청년은 너를 분별 있는 양친 밑에서 자라나고 예리한 아가씨라고 생각할 거얘요.”라고 어머니가 참견을 하면서, “만일 지금 그쪽 어머니에게 전화로 아버지가 보호자로서 함께 참석하신다는 것을 말하면 틀림없이 기뻐할 거얘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두 분의 혈육인 딸을 믿지 못하시는 거얘요?”
“물론 믿고 있지. 너희들은 굳세게 그리고 올바르게 키워졌으니까, 나는 딸을 전적으로 믿을 수 있는 거다. 그러나 아버지가 믿지 못하는 것은 그 응원단장이야. 그러니 내가 보호자로서 따라가던가 그렇지 않으면 초대를 중지하던가(*취소하든가) 어느 쪽이던지 좋도록 하렴.” “그쪽 어머니에게 전화로 이 사정을 말할가요.(*말할까요?)”라고 어머니가 묻는다.
안은 평소부터 조금씩 아버지를 설복시키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더욱 자기에게는 처음인 약속날에 방해자가 있으리라고는 미리부터 염려한 터이었다.
“좋아요. 어머니, 내가 말하겠어요. 두 사람이면 일이 잘 되어가지만 세 사람이면 시끄러운 일이 생긴다는 뜻의 격언조차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아직도 우리 집에 있다고 말해야겠어요. 그러면 그이는 무엇이라고 말할까?”
“그러면 그 자식 소-다수(*soda水) 값을 낼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서 아주 기뻐할 꺼야(*거야).”
“죠-씨의 차로 갑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 차?”
“그 자식 차로?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짐작하건데 문도 없고 천정도 없이 화재 때 준비로 무엇이 잔뜩 쓰여져(*쓰여) 있겠지. 그런 엉터리 차는 질색이야.”
드디어 그 날은 닥쳐왔다. 우리는 창에서 그이의 도착을 보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의 예언과 같이 그는 안의 동무와 같이 무엇이 잔뜩 쓰여져 있는 구식 T형 자동차로 왔다.
그 차는 배기관에 경적이 붙어 있어서 움직이고 있을 때에는 언제나 울리고 있었다. 그래서 차는 아직 보이지도 않는데 벌써 소리는 들려왔다. 보통 속도로 달릴 때에도 경적소리가 대단했는데, 속도가 빠를 때에는 그 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했다. 그러므로 이 차가 달릴 때에는 그 주변에 있는 사람은 길가로 구경을 나오고, 개는 겁을 먹어 다라나고(*달아나고), 어린아이는 무서워 울곤 하였다.
그는 현관에 닿자 엔진을 끄니 고맙게도 경적도 함께 꺼졌다. 그는 운전대에 앉은 채로 안이 나타낼 때까지 여러 번 나팔을 울렸다.
“들어오세요.”하고 안이 맞이하니 “오-케-(*OK) 영감님의 준비는 되었소?” 한다.
일행이 들어온 뒤 아버지는 차를 준비하려 차고에 가고 어머니는 손님을 맞이하려고 응접실에 들어갔다. 바로 그 때 죠-는 프랭크와 빌에(*빌에게) 나비형 넥타이가 어떤 것인가를 보이고 있었다.
“이것은 윌리암·텔(*William Tell)형 넥타이야.” 죠-는 그것을 이리저리 보이면서 설명했다.
“화살을 던지면(*쏘면) 능금이 맞는다는 이치야.” 프랭크와 빌은 아주 감탄해버렸다.
“우리 응원단장을 바로 옆에서 보는 것은 당신이 처음이애요. 정말 훌륭하군.” 하고 프랑크가 말한다.
어머니에게 소개되었을 때 죠-는 앉은 채로 있었다. 그렇지만 예의바르게 모자를 조금 벗어 올리고 머리를 약간 숙인다.
“응원가를 불러주세요.” 빌의 주문이다.
“우리도 다 알고 있어요. 누나들이 가르쳐 주었어요.” “응 그래 좋아.” 하면서 죠-는 뛰듯이 일어섰다. 그리고 그는 입에 손을 대고 큰소리로 외치기 시작하였으므로, 그 근처가 왕왕 울려서 어머니는 몸서리를 쳤다.
“후-라-라- 후-라-라- 전부 같이 시-작!” 죠-는 옆을 향하여 한쪽 무릎을 꿀고(*꿇고) 주먹을 쥐면에(*쥐고는) 다람쥐가 수레바퀴를 돌리듯 하는 모양을 했다.
“후-라-라-.” 하고 그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로 외치고 있을 때 아버지가 들어오셨다. 아버지는 이러한 행동을 못마땅한 눈치로 보고 있었다. 응원이 끝나니 아버지는 어머니 옆에 와서 “차가 움직이지 않아. 웬일인지 모르겠어. 어떻게 하지 않았는가?(*어떻게 한 건 아니지?)”
“저애의 차로 가시지.” “그 엉터리 차는 싫어.” “그러면 택시를 부르시지.” 하고 어머니가 말하니
“봐요. 저애는 안의 어깨까지밖에 오지 않는 꼬마야. 저런 꼴로는 안과 이상한 일도 생기지 않을 꺼야. 저 자식이 채이고(*차이고) 말 꺼야.” 하고 어머니에게 소근소근 이야기했다.
아버지는 앉아 있는 두 사람 옆에 와서 “모처럼이지만 너희들이(*너희들의) 땐스파-티에 참석할 수가 없게 되었어.”
“그것 참 좋습니다.(*그거 잘 됐네요.) 그렇지요 죠-.”라고 안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 버린다.‘
죠-도 솔직하게 기쁜 표정을 나타냈다. “그것 참 잘되었읍니다(*잘되었군요). 자- 갑시다 아가씨.”
“12시까지 틀림없이 돌아와야 해.” “아버지는 꼭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만일 1분이라도 늦으면 데리려(*데리러) 갈 터이니.” 하고 아버지는 안에게 말했다.
“그렇게 하겠어요.” 하고 안은 생긋 웃었다.
“우리 자동차 고장 덕을 단단히 보았어요.”
아버지의 최후
우리들은 전연 알지 못하였지만 아버지는 벌써부터(*진작부터) 심장이 나빳다(*나빴다). 그래서 바-튼 박사는 아버지에게 여명(餘命)이 얼마 되지 않음을 전하였다.
우리도 아버지가 점점 야위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25년 이후 처음으로 체중이 200폰드(*pound) 이하로 떨어졌다. 아버지는 서 있으면서 자기의 발이 보이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웃었다. 손은 떨리기 시작하고 안색이 좋지 못했다. 이따금 큰 아이들과 야구를 하거나 보부(*Bob)나 쥰(*Jane)과 마루에서 딩굴며(*뒹굴며) 놀 때에도 갑작이(*갑자기) 집어치우고 그만하자고 말하였다. 아버지가 걸어가는 것을 주의해서 보면 흔들흔들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는 55세였으니, 이러한 행동은 아버지에게 노년기가 닦쳐(*닥쳐) 왔던 까닭이라고 생각되었다.
아버지는 보부와 쥰이(*쥰을) 낳기 전부터 벌써 심장이 나빠진 것을 알고서,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 병이나 어머니가 여러 아이들을 다리고(*데리고) 미망인이 될 경우의 일에 대하여 상의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심장이 나빳던 일이 우리들에 대한 가정교육 계획의 중대한 이유의 하나가 되었다. 즉 아버지가 도우지(*돕지) 않아도 집안일이 잘되어 나갈 수 있고, 또 맏아이들이 동생들을 책임지고 돌볼 수 있게 가정을 능률적으로 운영해 나간 것도 그 까닭이었다. 무거운 짐이 어머니의 어깨 위에 걸머지워질 것을 알고 있었던 아버지는 어머니의 짐을 될 수 있는 대로 가볍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내일일른지(*내일일지) 혹은 6개월 후일른지(*후일지) 모르겠읍니다.”라고 바튼 박사는 요즘(*그즈음)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일을 하지 않고 누어(*누워) 있으면 겨우(*한) 1년은 지날 수 있겠지요,”
“그러한 일로는(*그 정도로는) 놀라지 않아요. 당신은 이미 잡지의 예약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3년째 말해오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나는 그것을 전연 믿지 않습니다. 나는 아직 혈기가 왕성하고 일이 너무 바쁠 정도이니까.”라고 아버지는 말한다.
“역시 노(老)개척자답기는 하군요.”라고 의사는 고소(苦笑)를 한다.
“나는 놀라지 않아요.”라고 아버지는 되풀이하면서 말하였다. “선생님을 조문(弔問)할 때는 교회에 참석하겠읍니다.(*선생님이 돌아가시면 조문 차 교회로 갑지요.) 그러면 쉬(*머잖아) 교회에서 만납시다. 선생님은 나를 보시지는 못하시겠지만.”
집에 돌아와서 아버지는 보스톤(*Boston)의 동무인 뇌(腦)연구가 미스·마-텔·캬나반(*Miss Martel Kanavan)에게 편지를 쓰시었다.
“마-텔씨, 내가 죽은 뒤에는 나의 뇌를 하-바드(*Harvard)대학에 보내주시오. 그곳에서는 당신이 말한 것처럼 뇌의 연구를 하고 있으니까요. 자세한 일에 대하여서는 당신에게 마끼겠읍니다(*맡기겠습니다). 모자의 크기는 7인치와 8분의 3입니다. 이것은 병(甁)을 준비하실 때의 참고로 말씀드립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지금 당장 죽기 때문에 그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그(*그런) 준비는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때가 되면 이 편지의 사본을 안해(*아내)에게 보일 수 있는 장소에 놓아둘 것입니다. 그러면 안해는 당신과 연락을 할 것입니다. 이번에 다시 만날 때는 제발 내 두개(頭蓋)를 감정만은 하지 말아주시오.”
편지를 부친 뒤 아버지는 마음속에서 죽음의 관념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세계동력회의(世界動力會議)와 국제능률회의가 각각 8개월 후 미국과 첵고스로바키아(*Czechoslovakia)에서 개최키로 되어 있었는데, 아버지는 그 모임에 초청을 받아서 강연을 할 예정이었다. 세계대전 후 산업 확장을 위하여 동작연구의 중요성이 점점 더 인식되어 왔다.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일이 이처럼 바빠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버지는 자기의 시간절약법과 노동자의 피로를 감소시키는 방법 등을 채용해서 생산을 높이기 위하여 여러 공장을 돌아다니었다.
1924년 6월 14일 아버지는 유롭(*Europe)에서 개최되는 두 회의에 참석하기 위하여 출범하기 3일 전에 세상을 따났다(*떠났다). 아버지는 뉴욕에 가기 위하여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던 중 공중전화로 어머니를 불렀다.
“여보! 여기 오는 도중 리-비회사(*River Soap Company)의 가루비누를 채우는 동작을 없애는 좋은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머니는 수화기를 통해서 찰각(*찰칵) 하는 소리를 듣고 그 뒤에는 조용해졌다, 어머니는 수화기를 흔들어보았으나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 날은 토요일 아침이었다. 동생들은 뜰에서 놀고 있었다. 우리 집 구매위원(購買委員)인 나이 많은 언니들은 시장에 나가 있었다. 6, 7인의 이웃사람들이 자동차로 외출중인 아이들을 찾으러 나가주었다. 그러나 아이들을 찾아도 아버지의 죽엄(*죽음)은 이야기하지 않고 “어머니가 부르신다.” “좀 사고가 있어. 빨리 이 차를 타요. 아주머니가 운전하고 갈 터이니.”
우리가 집에 와보니 사고는 누군가의 죽엄임은 알 수 있었다. 십여 명의 차가 집 근처에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그럴 리는 없어. 어머니가 우리에게 돌아오라고 하지 않았나(*않았던가). 그렇다면 아버지가? 그러나 아버지에게도 사고가 있을 리는 없어. 그렇다면 동생들 중에 누가 자전차에서 떨어져 말려(*휩쓸려서) 죽은 것이나 아닌가?’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차에서 뛰어내려 집에 들어가니, 쟠크(*Jack)의 얼굴은 손으로 비빈 곳이 까맣게 되어 있었다. “아버지가 죽어버렸어.”라고 그는 흑흑 느끼면서(*흐느끼면서) 말했다. 아버지는 우리 전부의 일부분이었다. 그러니 우리 전부의 일부분이 죽은 것이다. 아버지에게 군복을 갈아입히시었다. 우리 형제들은 방에 들어가서 아버지의 관을 들어보았다(*둘러보았다). 아버지의 표정은 엄격하시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보스톤에 있는 동무에게 보낸 예(例)의 편지 사본을 보았다. 그래서 아버지의 뇌는 하-바드대학에 보냈다. 화장을 한 후 어머니는 배를 빌려서 대서양으로 나아갔다. 배가 육지를 멀리 떠나니, 어머니는 뱃전에 혼자 쓸쓸하게 서서 아버지의 유회(遺灰)를 바다에 뿌리시었다. 이것이 아버지가 생시에 소원하신 일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딴사람처럼 변하시었다. 태도나 동작에도 변화가 엿보이었다. 결혼 전의 어머니의 생각은 양친의 생각과 같은 것이었다. 결혼 후의 어머니의 생각은 아버지의 생각과 같았다. 한 타-스(*打)의 아이를 가지자고 말한 것은 아버지였다. 어머니도 아버지를 닮아서 생산성의 전문가가 되었다. 만일 아버지가 바구니를 짷거나)(*짜거나) 골상학(骨相學)에 흥미를 가지게 되면 어머니도 의례이(*의례히) 그 일을 따랐을 것이다.
아버지가 계실 때 어머니는 여러 가지 무서운 것이 많았으나, 이제는 어머니에게는 무서운 것이 없어졌다 아버지의 사후 어머니가 우시는 것을 본 일이 없었다. 아버지의 사후 2일째 어머니는 곧(*바로) 가족회의를 열었다. 어머니는 우선 돈은 전부 사업에 써버리고 돈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할머니는(*할머니가) 어머니에게 아이들을 다리고(*데리고) 갤포니아(*California)로 오면 어떠냐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안은 학교를 그만두고 취직을 하겠다고 제의를 하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는(*돌아가시기) 전날 고등학교로(*고등학교를) 졸업한 아네스틴은 아예 대학에는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우선 어머니(*엄마)의 말을 다 들어보렴.” 하고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일층(一層) 더 위엄이 있어 보였다. “우리가 캘리포니아에 가는 외에 이러한 방법도 있어요. 그것은 자기의 일을 스스로 처리해 나갈 수 있는 너희들이래야만(*너희들이어야만) 비로소 할 수 있는 일이얘요. 그위에(*게다가) 그것은 너희들에게 상당한 희생을 요구하지 않으면 안되는 거얘요. 그래서 나는 너희들의 마음의 준비를 물어보고 싶은 거얘요.”
“어머니는(*엄마는) 아버지의 일을 계속하겠지요. 사무소도 여기에서 계속하겠어요. 그렇지만 차는 팔아버리고 간소하게 살아야만 되요(*돼요). 그렇게 해도(*하면) 우리는 전부 같이 살 수가 있어요. 안은 계속해서 학교에 나아가요(*다녀요). 아버지는 너희들이 죄다 대학에 다니기를 바라고 있었으니까.”
“이러한 일을 너희들은 하고 싶어 하는지? 내가 돌아올 때까지 집일을 잘 볼 수 있는지?”
“어디에서 돌아온단 말이애요? 어머니.” 하고 우리는 물었다.
“이곳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있으면” 하고 어머니는 책상을 치면서 말씀하시었다.
“내일 아버지가 출범하려던 배로 나는 갈 터애요. 아버지는 여행권을 가지고 있었으니, 어머니는 아버지 대신 론돈(*London)과 프라-그(*Prague 또는 Praha)에서 강연을 하겠어요. 아버지도 이것을 기뻐하실 거얘요. 이 결정은 너희들 마음에 달려 있어.”
아네스틴과 마-사는 짐 꾸리는 데 조력을 하려고 2층에 가고, 안은 식사계획을 세우기 위하여 부엌으로 사라졌다. 프랭크와 빌은 차를 팔기 위하여 거리에 나갔다.
누구인가 어느 때 아버지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일이 있었다. “무엇 때문에 시간을 절약하는 것입니까? 그리고 절약한 시간을 무슨 일에 쓰실 작정이십니까?”
“일을 위해서. 만일 당신이 일을 가장 사랑하신다면은…” 하고 아버지는 대답하셨다.
“교육을 위해서, 미(美)를 위해서, 예술을 위해서, 즐거움을 위해서.”라고 아버지는 안경 너머로 이렇게 말하시는 것이었다. [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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