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하노이에서 지난 28일 끝난 2차 북미 정상회담은 사춘기의 한구석을 차지하는 미국 포크가수 조앤 바에즈를 떠올리게 했다. 회담 장소였던 메트로폴 호텔을 소개하는 기사에서 1972년 12월 18~29일 미국이 북베트남 지역에 가한 ‘크리스마스 폭격’ 당시 하노이에 머물고 있던 바에즈가 이 호텔 방공호로 대피했다는 내용이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그 방공호에서 ‘지금 어디에 있니, 내 아들아’라는 곡을 만들었다는 것인데, 바에즈의 팬이라는 사실이 무색하게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곡이라, 인터넷에서 찾아 듣기 시작했다.
□ 22분에 달하는 이 곡은 음악이라기보다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곡은 공습을 알리는 사이렌과 폭격 소리로 시작한다. 이어 폭격이 휩쓸고 지나간 하노이 거리에서 베트남 여인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는데 바에즈의 일행이 “지금 어디에 있니, 내 아들아”라고 되뇌고 있다고 번역해준다. 그 후 바에즈가 이 흐느낌을 모티브로 만든 멜로디가 낭랑한 목소리로 시작되는데, 곡 군데군데 폭격 중 방공호 속에서 나누는 대화가 등장하고, 노래가 폭탄 소리에 중단되는 등 듣는 사람도 마치 그 자리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 그로부터 25년이 흐른 1997년 6월, 메트로폴 호텔에 베트남전 당시 미국 국방장관이었던 로버트 맥나마라가 나타난다. 미국과 베트남이 국교정상화를 한 후 2년 만에 전쟁 당시 베트남 외교부 차관 응우옌꼬탁과 만나 ‘그때 우린 왜 전쟁을 벌였을까’를 함께 복기하고 반성하기 위해서였다. 이 자리에서 맥나마라는 “당시 미국 정부가 남베트남이 무너지면 아시아가 모두 공산화된다는 ‘도미노 이론’의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3일간의 대화로 양측이 의견 일치를 이루진 못했지만, 상대에 대한 ‘무지’와 ‘공포’가 전쟁의 원인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었다.
□ 베트남전의 참화와 전쟁 당사자 간의 허심탄회한 반성을 모두 지켜본 그 호텔에서 20세기 냉전의 마지막 유산인 한반도의 운명을 건 회담이 이뤄졌다는 것은 우연으로 치부하기 힘들다. 북미 정상이 상대에 대한 무지와 공포를 없애기 위해 무릎을 맞댄 의미를 생각하면, ‘빈손 회담’도 합의로 가는 과정이다. 사족을 붙이면, 베트남전 당시 메트로폴 호텔의 이름은 ‘통녓 호텔’이었다. 통녓은 ‘통일’의 베트남식 발음이다.
정영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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