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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3ㆍ1의 길에서 노동을 묻다

입력
2019.03.01 04:4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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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ㆍ1 운동이 혁명인 이유는 새 시대를 열어 나갈 역동적 주체를 생산했기 때문이다. 바로 청년, 여성, 노동자다. 훈육의 대상으로만 여겨졌던 학생은 독립을 선도하는 청년 지식인으로 성장했다. 가부장제의 질곡에 갇혀 있던 여성은 만세 시위의 주역으로, 이후에는 독립운동과 사회 참여의 주체로 거듭났다. 노동자 역시 일제의 식민 자본주의를 거부하고 사회 개혁을 주도하는 계급적 주체로 역사의 전면에 나섰다.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착취와 비인격적 처우에 대항해 조직적인 파업을 전개해 나갔다. 작가 안재성에 따르면, 1917년까지 연평균 6건 정도에 그친 파업이 3ㆍ1 시위 이후에는 84건으로 급증했다. 그 양상도 전투적이고 전국적인 파업 농성으로 번져 나갈 만큼 조선의 노동운동 세력은 빠르게 성장했다(‘한국노동운동사’ㆍ삶이보이는창).

새로운 주체로 탄생한 조선의 노동자들은 어떤 세상, 어떤 노동을 꿈꾸었을까. 1922년에 조직된 최초의 전국적 노동단체인 조선노동연맹의 선언문에는 이를 짐작할 중요한 단초가 담겨 있다. “자본주의의 해독은 세계 도처에 미루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팽배하여 생산의 권위를 가진 노동자를 기계시하고 그 노동력을 상품시하여 우리 노동자의 고민과 비통함이 절정에 달하였도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기계가 아니다. 인격자다. 노동력은 상품으로 매매할 것이 아니라 공동 사회의 안전을 이루려는 인간성의 정당한 발현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단결력에 의하여 우리의 해방을 완전케 하고 신노동문화의 건설에 분투코자 한다(위 책, 56쪽).”

이 선언은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일부의 빈곤은 전체의 번영을 위태롭게 한다.”고 천명한 국제노동기구의 ‘필라델피아 선언’(1944년) 보다 20여년을 앞선다. 상품화된 노동을 거부하는 것은 물론 노동자를 ‘생산의 권위’를 지닌 주체로 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인식의 수준도 한층 높다. 전체의 번영을 위해서는 사회 정의가 필수적 조건이라는 필라델피아 선언은 ‘공동사회의 안전’, 곧 공동체의 안정과 번영을 위한 노동체제를 지향하는 노동연맹의 선언이 이미 구체화했다. 당시의 암울한 식민지 상황을 고려하면 임금 인상 등 경제적 요구에 매몰되는 ‘근대적 노동체제’를 목표로 삼을 만도 했다. 그러나 이에 그치지 않고 조선사회와 세계의 공생을 함께 도모하는 이상을 품었으니, 이는 민족 해방을 넘어 세계 평화를 지향하는 3ㆍ1 운동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다. 선언을 실천하기 위해 조선의 노동자들은 연대를 중시했거니와 기미독립선언서 공약 3장(“오직 자유로운 정신을 드날릴 것이요,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행동하지 말라.”)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1929년 원산 총파업을 이끌었던 원산노련이 채택했던 공목제도는 한 예다. 조합원들은 벌어들인 돈을 모두 모은 다음 부상이나 사고로 일을 하지 못한 동료를 포함해 모두에게 똑같이 분배했다(위 책, 113쪽). 연대에 대한 강한 신뢰와 높은 윤리가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제도이기도 했다.

그 정신은 70년대 전태일을 경유해 87년 민주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에까지 도달했다. 그러나 그 이후, 지금의 노동자 세대는 어떤 진전을 이뤄냈나. 대공장 노동조합은 자유를 경제적 이익으로 갈음한 채, 자신들만의 임금과 복지만을 좇는 이익집단으로 전락했다. 노동 대중은 정규ㆍ비정규, 대ㆍ중소기업 등으로 분할돼 넓은 연대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공동체의 번영을 위한 사회적 참여 의무 역시 방기하고 있다. 3ㆍ1 세대의 노동자들이 추구한 노동체제의 요체는 자유와 연대, 나아가 공동체의 정의와 번영을 구현함에 있다. ‘좋은 노동체제’를 만드는 일은 기업, 정부 등 모든 주체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노동계의 소임이 막중하다. 3ㆍ1의 길 앞에서 진지한 성찰로 새로운 시작을 열어나가야 한다.

신은종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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