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무써이(김무성) 삐(밖에) 음는기라. 딱 봐라. 늠름한 게 딱 싸내(사나이) 대장분기라.”
10여 년 전 참여정부 때로 기억한다. 기초노령연금이란 게 생겨 노인 분들 통장에 10만원 남짓 돈이 입금됐던 모양이다. 이 기쁜 소식에 동네 골목 어귀에 모인 할머니들의 칭찬 파티가 열렸다. 얼마나 되는 돈이냐 싶지만, 평생 10원 20원 따져가며 살림해온 ‘생활경제의 달인’들이다. 맛난 것 나눠먹고 손주 놈 옷 하나 챙길 정도는 되는, 꽤 쏠쏠한 액수다.
문제는 칭찬 대상이다. 칭찬하긴 해야겠는데, 부산 바닥에서 ‘나라 재정을 거덜 내고, 국가 안보를 팔아 먹었으며, 대통령의 품격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데다, 자기라 한들 별 다른 뾰족한 수도 없는 주제에 나라를 바꾸겠다 이리저리 들쑤셔서 시끄럽게 만드는 설익은 아마추어 빨갱이 노무현’ 따위를 칭찬하는 일은 일어날 수도,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적당한 과녁을 찾지 못해 허공을 헤매던 칭찬의 화살은 결국 지역구 의원 ‘김무성’에게 꽂혔다. 딱히 이유는 없다. 아마 김 의원 풍채에서 ‘든든한 맏아들 같은 포스’를 느꼈기 때문 아닐까. 그런 사람이라면 나랏돈 좀 헐어 용돈 10만원쯤 척척 나눠줘도 큰 이상 없어 보이지 않았을까.
그 당시 오랜만에 부산 친구들과 만났을 때 들었던 얘기다. 그 녀석들은 숨이 끊어질 듯 깔깔대느라 방금 비운 소주잔을 허공에다 대고 한참 휘둘러가며 이 얘기를 전했다. 깔깔댄 것만은 아니었다. 분위기가 가라앉자 “여는(여기 부산은) 완전히 글러문기라(틀려먹었다)”라던 한탄도 빠뜨리지 않았다.
카카오톡과 유튜브에서 어르신들을 홀리는 엉터리 가짜 뉴스니 팩트 체크니 하는 호들갑이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다. 점잔 빼느라 새삼 놀라는 척하는 것 같아 좀 신기한 기분이랄까. 지난 설날 부산에 갔더니, 김 의원이 받았던 칭찬 화살이 고스란히 황교안 전 총리, 아니 이제 자유한국당 황 신임 당대표에게 쏠리는 분위기였다. 이 또한 딱히 이유는 없어 보였다. 중후해 뵈는 용모와 말투 정도 아니었을까.
대표 경선 과정에서 나온 여러 잡음은 더 거론할 필요도 없이 많이 회자됐다. 보태거나 뺄 말도 없다. 여기서도 다들 자못 걱정스런 표정을 짓는 게 신기하다. 진보 성향이란 곳은 ‘10%’ 극우가 문제라더니, 보수 성향이란 곳은 10% 조차 너무 많아 보였던지 엄정한 계산법을 동원해 ‘2%’가 자유한국당을 흔든다고 썼다. 당 대표가 됐으니 이제 극우와 거리 둬야 한다는, 공자님 말씀 정도나 해야 할 차례인가 싶다.
‘시뮬라시옹’ 개념으로 유명한 어느 프랑스 학자가 그랬다던가. 디즈니랜드는 사실 미국 전체가 디즈니랜드라는 걸 감추기 위해 존재한다고. ‘2%’ 혹은 ‘일부’ 극우라는 레토릭은, 어쩌면 그들 모두가 극우라는 걸 감추기 위한 장치 아닐까.
때마침 묘한 책 한 권이 나왔다. 배리 골드워터의 책 ‘보수주의자의 양심’이다. 전쟁 영웅인 공화당 소속 아이젠하워 대통령조차 이전 민주당 정권 시절의 뉴딜 정책 뒤집기를 거부하자, 이에 불만을 품은 당내 극우파가 대선 후보로 민 사람이 골드워터다. 골드워터는 극우적 주장만 반복하다 공화당 역사상 최악의 대선 패배자가 됐다. 그래서 ‘보수주의자의 양심’에는 ‘폭삭 망한 어느 극단주의자의 망상’이란 조롱이 꼬리표처럼 붙어 다닌다. 이런 책이 60년 가까이 지난 지금 한국에 소개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골드워터는 “자유의 수호에 있어 극단주의는 결코 악이 아니다”라 주장한 인물이다. 그러니 폭정에 맞서는 자유의 투사들이여, 비겁하게 굴지 말라. 용기 있게 선포하라. 태극기 부대는, 극우는 결코 악이 아니라고. ‘일부’ 극우, ‘2%’ 극우는 거짓임을 선언하라. 보수주의자의 양심이다.
조태성 사회부 차장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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