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들이 십시일반 모은 동전으로 어려운 이들에게 기부
대구 서부경찰서 형사과의 마스코트는 ‘꽃돼지’다. 통통한 뱃살에 헤벌쭉 웃는 모습이 형사과와 어울리지 않지만, 형사들이 범인을 체포하는 것 다음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이 꽃돼지 관리다. 류동은(54ㆍ경감)형사2팀장은 “형사계에서 일하다 보면 딱한 사정을 접할 때가 많다”면서 “그때마다 꽃돼지가 나서서 미력이나마 힘든 이들을 돕는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꽃돼지의 나이는 4살, 이 녀석이 한 자리를 차지한 뒤로 형사과에 동전 소리가 사라졌다. 형사들이 동전이 생기면 하나같이 돼지저금통에 넣기 때문이다. 백학현(34ㆍ순경)형사는 담배를 사면 으레 생기기 마련인 500원짜리 동전을 어김없이 꽃돼지에게 헌납한다.
꽃돼지가 처음으로 동전을 밖으로 끄집어낸 것은 2017년이었다. 당시 류 팀장은 대구 성서경찰서 생활 범죄수사팀에 근무하고 있었다. 절도 피의자의 딸이 생활고 때문에 8km 통학 길을 걸어 다닌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금통을 털어 교통카드 충전 및 생활용품을 사는 데 썼다. 얼마 후에는 폐지를 줍다가 절도 혐의를 받은 어르신에게 식사비를 제공하기도 했다. 안타까운 사연이 있으면 어김없이 꽃돼지가 출동한다. 돈을 빼는 코부분은 덜렁거리다 못해 수시로 떨어진다. 류 팀장은 “돼지 저금통 하나 때문에 삭막해 볼 수 있는 형사과가 따뜻한 정이 넘치는 곳으로 바뀌었다”며 “경기가 어려워 그런지 생계형 범죄가 늘어나고 있어서 꽃돼지가 늘 배가 고파 보이는 게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아무 죄가 없는 사람도 선뜻 들어가기 힘든 형사과에서 뜻하지 않게 도움의 손길을 받는 이들이 느끼는 감동은 각별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가을에는 몸이 불편한 절도범이 검거됐다. 형사들은 꽃돼지를 열어 생필품을 사서 전달했다. 처음에는 받지 않으려고 손사래를 치다 나중에는 눈물을 흘리면서 연거푸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주폭으로 소문난 노인이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다 큰 상처를 입었을 때도 꽃돼지를 호출했다. 상처가 커 병원치료가 시급했지만 “돈이 없어 치료하지 않겠다” 떼를 썼다. 노인의 병원비에 꽃돼지 성금을 보탰다.
저금통의 사연을 알게 된 민원인들도 ‘기분 좋은 기부를 하고 싶다’며 성금을 넣는다. 저금통의 사연이 퍼질수록 기분 좋은 기부가 늘어나는 분위기다. 류 팀장은 “올해는 돼지해인 만큼 꽃돼지의 배가 불러 터질 때까지 안타까운 사연 없이 잘 넘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