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3단계 전환 계획 발표
정부가 20만명에 이르는 민간위탁 근로자의 전면적인 정규직화를 사실상 포기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의 진행 과정에서 공공부문 비대화 우려와 구직자와의 형평성 문제 등이 제기된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민간위탁 종사자의 근로조건을 개선하겠다지만 한계가 분명할 거란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27일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을 담은 민간위탁 정책추진방향을 발표했다. 정부는 2017년 7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계획을 밝히면서 전환 대상 기관을 3단계로 나눠 순차적 전환을 하기로 했다. 1단계는 중앙정부, 지자체, 공공기관 등이고 2단계는 지자체 출연ㆍ출자기관, 공공기관의 자회사였다. 1, 2단계는 이미 정규직 전환이 진행 중이다. 마지막인 3단계 민간위탁기관의 정규직 전환 방향이 이날 결정된 것이다.
민간위탁은 행정기관의 사무를 법인이나 단체, 개인에 맡겨 해당 민간단체가 책임을 지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외환위기 이후 급증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간위탁 사무는 총 1만99개였고, 수탁기관은 2만2,743개, 근로자 수는 19만5,736명에 달했다. 이런 민간위탁의 절반 이상(58.0%)이 경쟁입찰 방식으로 일감을 따내기 때문에 소속 위탁업체 근로자의 고용 불안이 높다. 조사 결과 민간위탁 사무 92.8%가 상시ㆍ지속 업무였으나, 경쟁위탁 제도와 예산 변동 가능성 등 탓에 근로자 고용승계 규정이 없는 비율이 75.5%나 됐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신세라는 얘기다. 민간위탁 비리 역시 열악한 근로조건을 부채질하는 요인이다.
그러나 정부는 근로자 보호를 위해 민간위탁 업무를 공공부문으로 가져오는 대신, 민간위탁 대부분을 남겨둔 채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방식을 택했다. “민간위탁은 법령 근거, 자치분권, 사무의 다양성 등으로 인해 위탁 업무를 직접 수행(정규직 전환)하는 방안에 대한 일률적 기준 설정, 구속력 있는 지침 시달은 한계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구체적으로,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고용부는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공공기관에 배포한다. 공공기관이 민간위탁업체를 선정할 때 가이드라인을 참고해 고용승계와 적정 정규직 비율, 합리적 임금체계 등을 갖춘 곳을 우선 선정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6월 중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예정이다.
물론 모든 민간위탁이 존치되는 것은 아니다. 개별 공공기관이 현재 민간위탁 업무를 민간위탁으로 남겨두는 게 적정한지 검토하게 할 예정이다. 하지만 강제성은 없으며 개별 기관이 알아서 판단하면 돼 실제 정규직 전환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얼마나 될지 미지수다. 김홍섭 고용부 공무원노사관계과장은 “정규직 전환을 위해 정원을 늘리려면 개별 기관이 직접 행정안전부 등을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청소나 경비 등 민간위탁 아닌 용역업체에 맡겨야 하는 업무를 민간위탁한 때에는 고용부가 개입해 정규직 전환을 검토하기로 했다. 또 ‘위험의 외주화’처럼 사회적 논란이 있는 민간위탁은 소관 부처가 직접 민간위탁 유지의 타당성을 검토하도록 했다.
노동계는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정책이 용두사미로 막을 내렸다며 강하게 반대 목소리를 냈다. 한국노총은 “정규직 전환 정책의 퇴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민주노총은 “정규직 전환이 희망고문이었음을 확인시켜줬다”고 각각 비판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공공기관에 알아서 하라는 방식은 무책임해 보이며 어느 정도 수준으로 민간위탁을 남기는 것이 적정할지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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