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북 독립운동가 아들 변순용씨
“아버지의 명예가 이제라도 회복됐으면 좋겠습니다..”
최근 경기 화성시에서 만난 변순용(75)씨는 거실 소파에 앉아 아버지의 사진과 관련 서류를 보며 일말의 기대와 함께 한숨을 내쉬었다.
변씨는 지난해 국가보훈처에 아버지를 독립유공자로 인정해 달라고 신청했다가 거절당했다. ’광복 이후 행적 불분명‘이라는 이유에서다. 독립운동은 인정하면서도 광복 이후 행적을 문제 삼은 것이다.
변씨는 “‘광복 이후’가 무슨 의미냐고 물으니 ‘(광복이후) 월북하신 분들은 현행 법상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실제 변 씨의 아버지 변기재는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였다. 1903년 수원구 성호면 오산리에서 태어나 1926년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가 그곳에서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귀국 후 1928년 사회주의 청년들로 구성된 수원청년동맹 창단에 깊이 관여했다. 민족주의 좌파와 사회주의자들이 연합해 만든 ‘신간회’ 멤버이기도 했다.
이후 1930년 청년동맹 산하에 오산노농학원을 만들어 노동자와 아이, 여성들에게 한글교육을 보급하면서 동시에 사회주의 사상도 가르쳤다. 그러던 중 1932년 일본 경찰에 의해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1년 6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해방 이후에는 사회주의 활동을 벌이며 화성군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내다가 월북했다.
변씨가 보훈처의 결정에 불만을 토로하는 이유는 △월북 후 아버지의 행적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점 △남한에 남은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은 유공자로 인정된 점 △아버지와 같이 ‘행적 불분명’인 다른 인물은 유공자로 인정받은 점 등 심사 기준에 문제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이런 기준을 수정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조금의 기대감이 부풀어오르고 있다. 지난해 6월 독립유공자 포상심사 기준 개선 방안이 담긴 ‘제4차 국가보훈발전기본계획(2018~2022년)’을 발표하면서 사회주의 활동가에 대해도 ‘북한정권 수립에 기여하지 않은 경우 포상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냈기 때문이다.
변씨는 “수원기생이었던 김향화라는 여성은 당시 만세 운동을 하다 체포돼 6개월 선고를 받은이후 행적이 전혀 없는데도 2009년 독립유공자로 인정됐다”며 “또 당시 월북하지 않고 남한에 남은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대부분 유공자로 인정됐다“고 전했다. 단순히 월북했다는 이유만으로 서훈을 받지 못했던 과거와는 다른 평가를 해주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도 이런 배경때문이다.
그러면서 “나도 이제 나이가 70대 후반인데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만 간다”며 “죽기 전에 아버지 명예를 꼭 찾아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보훈처 관계자는 “’행적 불분명’으로 접수된 분들이 몇 명인지 공식 데이터는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분들이 모두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는 아니다”며 “판정 기준도 이념이 아닌 관련 법령, 심사지침에 따라 평가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3ㆍ1운동 100주년 기념과 더불어 북미 정상회담, 남북간 화해무드 등 평화시대가 열리는 만큼 이제는 국가가 이들을 포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변기재 등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 이동근 수원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일제 강점기에 사회주의 운동은 분명한 독립운동이었다는 점에서 그 공적을 인정해 줘야 한다”며 “상당수의 후손들이 대한민국에 살아 있는 만큼 국가가 분단의 아픔을 넘어 그들을 독립운동가로 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임명수 기자 s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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