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프란시스대학 15기 입학식
“하고 싶은 것도,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당장 벌어 먹고 살기 바쁘다 보니 생각할 겨를이 없었죠.”
27일 오전 서울 용산구 ‘문화카페 길’에서 김민자(44)씨는 자신이 노숙인이란 것을 스스럼 없이 털어놨다. 다들 그렇듯 김씨 역시 원해서 선택한 노숙 생활은 아니었다.
술만 마시면 어머니를 때렸던 아버지를 보며 자란 김씨는 학창시절 늘 고개를 숙이고 다녔던 소심한 학생이었다. 수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으니 공부를 제대로 하기도 어려웠다.
아버지를 피해 집을 나온 스물 한 살 이후 일정한 주거 없이 전국을 떠돌았다. 일터에서 숙식을 해결 하거나 그렇지 못할 때는 노숙인 쉼터의 한 구석이 잠자리였다. 지금도 서울의 한 여성 노숙인 쉼터에서 생활하는 김씨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공간도, 함께 할 사람도 없었다. 쉼터에서 만난 친구들은 다들 얼마 뒤 퇴소했고 이후론 연락이 끊겼다.
그렇게 점점 혼자가 되어가던 중 알고 지내던 사회복지사에게 “인문학을 배우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들었다.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과정인 ‘성프란시스대학’이다.
늘 후회했던 자신의 삶을 바꿀 기회라 생각한 김씨는 입학을 결심했고, 이제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외톨이에서 벗어나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그는 “꼭 ‘버스 종점’까지 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며 “다음엔 바리스타 과정도 배우고 수영, 운전도 배우고 싶다”며 밝게 웃었다.
이날 오전 문화카페 길에서는 성프란시스대학 15기 입학식이 열렸다.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가 서울시와 보건복지부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성프란시스대학은 2005년 개설 후 14년간 232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올해는 27명의 노숙인들이 1년간 글쓰기와 철학, 한국사, 문학, 예술사 등을 듣기 위해 모였다.
입학생들의 면면은 그들이 살아온 삶만큼이나 다양하지만 살아갈 의지를 찾고 싶다는 바람만은 한결같았다. 외환위기 시절 사업이 망하고 일용직을 전전하다 각막까지 다치며 청계천 거리로 내몰렸던 최모(69)씨는 “그저 움직이고 싶지가 않았다”고 노숙 첫 날을 떠올렸다.
몇 백 군데를 돌아다니며 일자리를 찾았지만 끝내 실패한 최씨는 아무 생각 없이 청계천을 걷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20끼를 내리 굶은 어느 날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도움의 손길을 내민 한 복지사를 보며 ‘이 사람의 백 분의 일이라도 하자’고 마음을 고쳐먹은 최씨는 새 삶을 준비하기 위해 인문학과정을 선택했다. 그는 “마음의 여유를 되찾고 싶다”며 “살려는 의지가 10%라도 남는다면 성공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지난해 졸업생 대표로 입학식에 참석한 권오범(51)씨는 “예술사 수업 시간에 희망, 행복 이런 상징을 담은 그림을 봤는데 ‘이 과정이 끝나고 무엇을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그 때 처음 했다”며 “알코올중독에 빠져 술을 마시는 게 일상이었는데, 여기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여러 생각들을 나눌 수 있었고, 지금은 요양보호사 학원을 다니려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성프란시스대학이 15년째 노숙인에게 별로 상관 없어 보이는 인문학을 가르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대학 운영을 맡은 안상협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학무국장은 “노숙인들은 대부분 마음이 무너져 있고 자기를 돌아볼 시간도 없이 하루하루 앞에 놓인 극한 생존에만 신경을 쓰게 된다“며 “일 년의 공부로 극적인 변화가 생길 수야 없겠지만, 다시 자아를 찾을 시간, 의지할 동료들이 생기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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