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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는 많은 친척이 희생된 독립운동의 기억 지우고 싶어 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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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는 많은 친척이 희생된 독립운동의 기억 지우고 싶어 하셨어요”

입력
2019.02.27 17:17
수정
2019.02.27 19:41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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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의병장 허위 선생의 외고손녀 정안겔리나씨

항일 의병장 왕산 허위 선생의 장손녀인 허로자씨가 경북 구미에서 열린 왕산기념관 개관식에 참석, 할아버지의 동상을 올려다 보고 있다. 2009.9.28. 연합뉴스
항일 의병장 왕산 허위 선생의 장손녀인 허로자씨가 경북 구미에서 열린 왕산기념관 개관식에 참석, 할아버지의 동상을 올려다 보고 있다. 2009.9.28. 연합뉴스
항일 의병장 왕산 허위 선생의 외현손 정안겔리나씨(첫째 줄 오른쪽에서 네번째)가 27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청사에서 열린 독립유공자후손 국적증서 수여식에서 박상기 법무부 장관 등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항일 의병장 왕산 허위 선생의 외현손 정안겔리나씨(첫째 줄 오른쪽에서 네번째)가 27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청사에서 열린 독립유공자후손 국적증서 수여식에서 박상기 법무부 장관 등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항일 의병장 왕산 허위 선생의 외현손 정안겔리나씨
항일 의병장 왕산 허위 선생의 외현손 정안겔리나씨

“외할머니는 독립운동을 하다 너무 많은 친척들이 죽어서, 그래서 너무 마음이 아파서 도저히 살 수가 없다며 독립운동 기억을 지우고 싶어 하셨어요. 어릴 때부터 어른들이 과거 선조들 얘기는 많이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어요. 제가 그나마 고조 할아버지 이야기를 자세히 알게 된 건 2015년쯤이예요.”

27일 경기 과천 법무부에서 대한민국 국적을 받아 든 정안겔리나(27)씨의 고백이었다. 정부는 이날 해외에 남은 독립운동가 후손 39명에게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하는 행사를 열었다.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 했던가. 정작 그 후손은 독립운동 기억을 떠올리기 힘들어 했다.

정씨는 왕산(旺山) 허위(許蔿ㆍ1854~1908) 선생의 4대손, 더 정확히는 외고손녀다. 경북 선산 대지주 집안에서 태어난 허위 선생은 구한말 조국의 운명이 풍전등화 같은 상황에 놓이자 의병 활동을 벌였다. 맏형 허훈(1836~1940)은 전 재산을 처분해 동생에게 자금을 대줬다. 허위 선생은 1907년 대한제국 군대 강제해산에 항의하는 의병들을 모아 서울진공작전을 벌이다 일본군에 붙잡혀 1908년 9월 사형당했다. 이후 수많은 애국지사가 죽어나가는 서대문형무소의 1호 사형수였다. 죽기 전엔 “나랏일이 여기에 이르니 죽지 않고 어찌하랴. 내가 지금 죽을 곳을 얻었으니, 너희 형제간에 와서 보도록 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허위 선생의 당부는 일족에게 영향을 끼쳤다. 허위 선생이 죽은 뒤 1910년을 전후해 직계뿐 아니라 사촌들까지 줄줄이 만주로 건너갔다. 일제 탄압을 피해 독립운동을 벌이기 위해서였다. 허위 선생의 장남 허학(1887~1940)씨는 만주에서 교육사업을 벌이다 고종의 밀명을 받아 조직된 의병단체 대한독립의군부 사건 주모자로 일경에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허학씨의 동생 허영ㆍ허준ㆍ허국씨도 일제에 평생 쫓기는 몸이 됐다. 허학씨는 결국 일제 밀정에 체포돼 카자흐스탄에서 숨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허위 선생의 사촌 형으로 역시 독립운동을 했던 허형(1843~1922)씨의 외손주가 저항시인 이육사다.

허위 선생 후손들은 일제의 집요한 추적에 만주에서도 제대로 살기 힘들어 옛 소련 지역으로 옮겨갔다. 나중엔 소련의 극동 유민 강제이주 정책에 따라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로 뿔뿔이 흩어졌다. 새로운 땅에 보내진 그들은 다시 농사를 짓고 정착해야 했다.

이런 스토리 때문에 허위 선생 개인 뿐 아니라 허위 선생의 집안 자체도 최고의 독립운동가 집안으로 꼽힌다. 허위 선생은 안중근ㆍ윤봉길ㆍ안창호ㆍ김구 등과 가장 영예로운 훈장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수훈한 최고 선열 59명 중 한 사람이고, 서울 신설동 교차로와 시조사 삼거리를 잇는 길 ‘왕산로’는 허위 선생을 기리는 이름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허위 선생의 직계 후손들을 챙기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2006년 허위의 손녀딸이자 정씨의 외할머니인 허로자(94)씨가 귀국해 한명숙 당시 국무총리를 면담하며 우리 국적을 취득했다. 정씨는 “늘 조국을 그리워하던 할머니가 한국에 정착한 뒤 건강해진 듯 해서 기분이 좋다”며 “이제 나도 한국 국적을 취득한 만큼 자주 오가면서 할머니를 보살펴드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2006년 참여정부가 해외 독립유공자 후손에 한국 국적을 주는 정책이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한국 국적을 받은 사람은 326명 수준이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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