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규 작가 신작 ‘메이드 인 강남’
생생한 취재로 소설과 현실 오버랩
“강남에서의 밤, 그 노른자위를 차지하는 건 하릴없이 떠도는 유동인구가 아닌 상위 0.1퍼센트들의 세상이다. (…) 강남의 진짜 밤을 주관하는 주인들은 매일 엄청난 돈을 쓰며 변태적 성행위부터 마약 그리고 적당한 수준에서 허용되는 폭력 행위를 일상적으로 행해왔다. 그런 사람들은 뒤처리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상식 이상의 돈을 주고 강남의 밤을 매수한 뒤에는 그 안에서 하는 모든 행위가 허용되기 때문이다.”
지금 현재 한국사회를 가장 뜨겁게 달구고 있는 ‘버닝썬 클럽’ 사태를 요약한 신문 기사나 칼럼이 아니다. 최근 출간된 장편소설의 한 대목이다. ‘열외인종 잔혹사’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고 tvN 드라마 ‘아르곤’을 집필한 주원규 작가의 신작 ‘메이드 인 강남’에는 서울 강남 일대를 배경으로 자본과 욕망, 불법과 이를 무마하는 권력, 그리고 이 권력과 결탁한 경찰과 법조 카르텔이 등장한다.
소설은 강남 중심에 있는 초고층 호텔 펜트하우스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피살자는 대한민국 상위 0.1%라 불리는 권력자들과 유명 아이돌. 마약에 취해 난교파티를 벌이던 중 처참하게 살해당한다. 그러나 이들의 죽음은 ‘설계자’라 불리는 이들에 의해 심근경색, 자살 등으로 위장되고 어디에도 발설되지 않는다. 죽음의 그림을 새롭게 그리는 ‘설계자’들은 대형 로펌의 변호사와 강남경찰서 소속 경찰이다.
소설은 주 작가의 생생한 취재를 통해 탄생했다. 3년 전 다른 작품의 취재를 위해 강남의 ‘호스트바’에 위장 취업했다 ‘눈으로도 보고 믿을 수 없는’ 장면들을 목격했고, 어떻게 세상에 알릴 수 있을지 고민하다 소설을 썼다. “지금 버닝썬 사태에서 논란이 된 GHB, 이른바 ‘물뽕’은 정말 아무렇지 않게 유통돼요. 클럽에 오면 다들 ‘물뽕 없냐’고 묻고, 눈 앞에서 마약이 오고 가는데도 그 어떤 신고나 경찰 수사도 없었어요. 취재한 6개월 내내요. 이상하고 놀라웠죠.” 실제 버닝썬에서 물뽕이 유통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물뽕을 비롯해 각종 강간약물과 마약이 강남 일대 클럽에서 공공연하게 돌아다닌다는 게 27일 전화로 만난 주 작가의 설명이다.
현재 사건과 소설이 가장 겹쳐 읽히는 대목은 각종 불법행위의 뒤를 봐주고 이를 무마해주는 경찰과 법조인의 존재다. 소설에는 권력자들로부터 돈을 받고 각종 사건을 ‘처리’하는 ‘강남경찰서 강력계 소속 경위’가 나온다. 버닝썬 사태에서도 강남 경찰서의 비호와 유착이 있었던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주 작가는 “양심 선언을 하려던 경찰 차의 브레이크 라인을 끊어놓는다든가, 각종 향응 접대를 한 뒤에 이를 약점 잡아 수사를 원천 차단한다는 이야기를 취재원들로부터 들었다”고 전했다.
주 작가는 소설과 현실이 공교롭게 겹치는 걸 씁쓸해했다. “소설은 픽션이어야 하는데, 현실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 자체가 안타까운 일이죠. 버닝썬은 ‘폭탄 돌리기’를 하다 그 폭탄을 우연히 받게 됐을 뿐, 버닝썬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에요. 탈선과 성 착취, 유착의 카르텔은 지금도 존재하고 있어요. 이번 계기로 완전히 없어지기 바랍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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