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형 적합 업종 지정까지 ‘규제 공백’… 대기업 진출할까 불안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들이 3월 1일 이후 오픈하려고 점포 가맹 계약을 미뤄두고 있다는 말이 파다합니다. 진짜 그런 일이 벌어지면…”
서울 신대방동에서 중소제과점을 3년째 운영 중인 바로방브레드 하영청 사장은 요즘 걱정이 태산이다. 인근에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이 들어서면 가뜩이나 어려운 빵집 운영에 심각한 타격이 생기기 때문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를 막기 위해 다양한 제도를 도입, 운영하고 있는데, 빵집의 경우 다음달 1일부터 ‘보호막’이 사라진다. 소상공인들은 이 기간 동안 대기업들의 무분별한 상권 진입이 이뤄질까 걱정하고 있다.
상황은 이렇다. 지난해 12월 영세 소상공인들이 주로 운영하는 업종에 대기업들의 진출을 금지하는 ‘생계형 적합업종 제도’가 시행됐다. 지난해 6월 여야 합의로 제정된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관한 특별법’에 따른 것이다.
생계형 적합업종 제도는 기존에 비슷한 취지로 운영됐던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보다 강한 법적 구속력을 갖는데, 사회ㆍ경제적 보호가 시급한 영세 소상공인을 우선적으로 보호하도록 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은 중소기업 보호를 위해 대기업의 과잉 진출을 제한하는 제도로, ‘대ㆍ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동반성장위원회가 2011년부터 자율 권고나 합의를 통해 품목을 지정했다. 제도 시행 기간은 최장 6년(한 차례 3년 연장 포함)이며 지금까지 79개 품목이 지정돼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대기업이 이를 어겨도 동반성장위원회가 해당 기업 이름을 언론에 공표하는 것 외에 특별한 제재 수단이 없었다.
반면 ‘생계형 적합업종 제도’는 위반 시 처벌을 강화했다.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업종에서 대기업이 매장을 인수하거나 사업을 개시하고, 확장하는 게 금지된다. 어기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1억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정부의 시정 명령을 어기면 해당 기간 매출액의 5%까지 이행 강제금이 부과된다. 지정기간은 5년이며 재심의를 통해 연장 가능하다.
소상공인 입장에서는 더 안정적인 경영 여건이 마련된 셈이지만, 엉뚱하게 행정 공백이 생겼다. 생계형 적합업종에 지정되기까지 오랜 기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중소기업벤처부에 따르면 기존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이 풀리는 업종을 대상으로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신청 자격이 주어지는데 최종 지정까지 최대 15개월까지 걸릴 수 있다. 동반성장위의 지정 추천(6개월 이내+3개월 연장 가능), 중기부 심의위원회(3개월 이내+3개월 연장 가능)의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존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기한이 곧 만료되는 업종이 적지 않다. 제과점업, 서적 및 잡지류 소매업, 중고자동차 판매업, 자동판매기운영업, 플라스틱 봉투, 화초 및 산식물(생화) 소매업, 가정용 가스연료 소매업 등은 당장 이달 28일 보호 기간이 만료된다. 이 가운데 서적 및 잡지류 소매업, 중고자동차 판매업, 자동판매기운영업, 제과점업이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신청을 마쳤지만 최종 지정까지 1년 여의 공백기가 생길 수 있다.
대한제과협회 관계자는 “마지막 있던 비닐하우스마저 걷어지는 셈이다. 6년 동안 기다려 온 파리바게뜨(SPC)나 뚜레쥬르(CJ푸드빌)가 3월1일 이후 동네빵집 바로 옆에 출점하는 일이 생기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고 우려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 관계자도 “작년부터 유예기간이 필요하다고 수 차례 요청했지만 동반위는 난색을 표했다”며 “앞으로 9~15개월 동안 소상공인들은 내 가게 바로 앞에 언제든 대기업이 들어올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 졸여야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와 관련해 동반위 관계자는 “(대기업과 소상공인 단체 간) 상생 협약을 할 수 있도록 계속 유도하고 있다. 모니터링도 꾸준히 할 것”이라고 밝혔다.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지적에 중기부 관계자는 “진짜 보호가 필요한 생계형 업종인지 확인해야 하고, 실태 조사 항목이 많아 어느 정도 시간은 걸릴 수밖에 없다”며 설명했다.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SPC그룹 관계자도 “대규모 출점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대기업들이 하청업체를 동원하는 등 우회로를 통해 시장 진입을 시도할 거란 우려가 나온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 관계자는 “대기업이 시장을 형성하는 건 금방”이라며 “다 뚫리고 나서 1년 뒤 생계형 적합업종에 지정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어떤 자구책을 마련해도 복구가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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