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세계경제포럼(WEF)은 향후 세계가 직면할 화두로 ‘4차산업혁명’을 제시했다. ‘로봇이 약을 처방하고, 3D프린터로 집과 자동차를 만들며, 정부는 ‘블록체인’으로 세금을 징수하게 된다.’ WEF가 그린 4차산업혁명이 가져올 변화된 미래 모습이었다.
WEF의 예견은 불과 3년여 만에 이미 현실로 우리 곁에 다가오고 있다. 산업화 시대를 벗어나 지금까지 없던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각 국가는 규제를 풀고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를 접목해 신산업 생태계 만들기에 분주하다.
반면 우리는 여전히 정부 규제에 막혀 있다. 애플워치보다 앞서 손목시계형 심전도 기술을 개발하고도 한동안 실용화시키지 못하거나, 이권단체들의 반발에 ‘카풀’ 사업이 좌초되기도 했다. 우리는 4차산업혁명시대를 어떻게 대하고 준비해야 할까.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4차위) 위원인 이상용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를 21일 만나 지금 왜 ‘규제샌드박스’가 필요한지, 4차산업혁명의 중심에 선 인공지능(AI)이 우리 미래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등에 대해 들어봤다.
-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어떤 일을 하는 곳입니까.
“4차산업혁명이란 AI, 빅데이터 등 지능정보기술로 촉발된 새로운 세상을 말합니다. 4차산업혁명위는 규제·제도 혁신을 위해 만들어진 대통령 직속 위원회입니다. 지금까지 위치 정보, 개인 정보의 보호와 활용, 혁신의료기기 등에 대해 해커톤(팀을 이뤄 마라톤을 하듯 긴 시간 동안 논의를 하고 결론을 내는 회의) 등을 진행하며 4차산업혁명에 선제적, 능동적으로 대응해 왔습니다. 우리 위원회는 4차산업혁명시대를 맞아 정책결정권자인 대통령에게 민간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조언을 하는 자문기관입니다.
지난해 4차산업혁명위 2기가 출범했습니다. 1기 위원회에서는 정부 정책을 검토하고 권고안을 냈으며, 주요 이슈에 대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관계 부처와 민간전문가, 이해관계자들과 논의를 해왔습니다. 대표적으로 자율주행차TF와 의료헬스TF가 있습니다. 또 사회적으로 갈등이 큰 이슈, 정책상 혼선을 빚는 이슈는 해커톤 형식의 끝장토론을 통해 좀 더 깊은 논의를 나누기도 합니다. 전문가들은 토론하고 합의점을 도출해 정부에 의견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또 이 토의 결과를 반영해 법안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올해 시작된 2기 위원회에서도 각 이슈별TF와 해커톤이라는 형식은 가져갈 계획입니다. 다만 이번에는 4차산업혁명위가 주도적으로 나서 정부에 권고안을 제시할 예정입니다. 개별 정책에 대한 피드백이라기보다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우리나라가 나가야 할 방향과 원칙, 철학 등을 담아낼 것입니다.”
- 최근 규제혁신과 관련해 이슈가 뜨겁습니다. 4차산업혁명 시대에 규제혁신의 의의와 필요성을 알고 싶습니다.
“창의는 자율이 있어야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규제는 자율적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즉 규제혁신은 자율을 회복시키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율을 막았던 이유는 자율이 타인에게 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과도한 자율제한은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킵니다. 특히 4차산업혁명에서 규제혁신은 더욱 중요한 요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새로운 산업은 대부분 규제 대상이 되기 때문에 기존 규제로는 신산업 개발도, 따라가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기술을 먼저 개발하고 서비스해야 4차산업혁명 시대에 시장을 만들고 지킬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 산업은 더이상 선진국을 따라가서만은 안 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우리가 먼저 규제혁신을 통해 새로운 산업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고, 이것의 바탕에는 규제혁신이 있습니다.”
- 현장에서는 규제혁신 속도가 아직 더디다는 목소리가 큽니다.
“이제 혁신이 경제성장의 주된 동력이 되는 시대입니다. 혁신을 위해서는 개인의 자율과 창의가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규제라는 것은 자유의 제한으로, 행정법으로는 허가를 뜻합니다. 허가는 일반적 금지에 대한 해제이며 이를 다시 회복시켜야만 창의와 혁신이 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원하지 않아도 이제 혁신하고 앞으로 나가야 할 때입니다. 혁신하지 못하면 또다시 남들을 따라가야 하는데 그렇게 뒤쳐져 버린 산업이 이미 여럿 있습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국민은 국가에 공평하고 투명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물론 중요한 요구지만, 이제는 효율화도 함께 논의되어야 할 때가 왔습니다. 공평, 투명, 효율화의 균형이 맞춰질 때 4차산업혁명 시대 우리도 경쟁력이 생기리라 판단됩니다.
지금은 신고 인가마저도 공무원들이 재량권을 충분히 발휘하지 않습니다. 이런 소극적 행위가 정부를 벗어나 민간에게까지 전염되는 상황에 놓인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입니다.”
-규제와 완화는 늘 이해관계자들의 대립과 갈등을 일으킵니다. 해결법이 있을까요?
“허가제도가 생기면 시장 진입장벽이 높아집니다. 사실 이것이 소위 ‘밥그릇싸움’입니다. 우리는 경제활동을 하기에 밥그릇싸움은 신성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물론 싸움에서 서로 이기려 하겠지만, 싸우더라도 공정한 방법으로 싸워야 합니다. 진입장벽을 높이는 방식의 싸움은 지양해야 합니다. 진입장벽이 높다면 이를 낮춰 자율성을 회복시켜주고 시장 진입을 열어줘 서로가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또 절차에서도 이해관계자를 참여시켜 충분한 설명과 설득을 하는 과정이 전제돼야 할 것입니다. 제가 판사 시절 재판을 하면서 느낀 점입니다. 자기의 의견을 충분히 이야기하면 그 자체로 패소 판결을 받고도 만족할 수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즉 숙의적 민주주의 제도화가 대립과 갈등을 줄여줄 수 있을 것으로 저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사회적 이슈마다 TF를 만들 것이 아니라 입법영향평가제도를 법제화할 필요도 있습니다. 해당 법안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전문가, 이해관계인 등에게 듣고 충분한 토론을 거친 뒤 합의가 되었을 때 법안을 발의해야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서로의 반목과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4차산업혁명에서 AI는 빼놓을 수 없는 기술이지만, 이것이 사회적 갈등이 될 것이란 예상도 있습니다.
“AI는 정보화, 자동화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AI는 산업의 비용을 낮출 것이고 빅데이터는 혜안을 주기도 합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줄 수도 있습니다. AI는 자율성, 합리성, 인간과의 유사성을 특징으로 가지는데 이 때문에 일자리의 변화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질적으로는 직무의 변경이 발생할 수 있고 정규직 보호 필요성이 낮아질 수도 있습니다. AI가 등장한다면 정규직 보호보다는 비정규직의 처우를 높이는 방식으로 산업 개편이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AI가 여러 문제를 일으킬 것이란 지적도 있습니다.
“AI의 위험책임이 문제가 될 수는 있습니다. 이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가 지면 해결됩니다. 딥러닝(Deep Learning)에 의한 문제도 있을 수 있습니다. 법적 지위의 문제도 예상됩니다. 지금도 일부 사람들은 동물을 인간화하고 있습니다. AI가 고도로 발달하면 AI를 인간으로 봐야 할지, 그렇지 않을지도 논란이 될 것입니다. 앞서 말한 이런 문제들이 지금 당장 발생하지는 않겠지만 차츰 논의가 이뤄진다면 사회적 합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봅니다.
또 고도로 발전된 AI가 나쁜 일에 사용될 수도 있고, AI 사용독점 문제가 발생하기도 할 겁니다. 지금 인터넷은 모두에게 개방이 되어 있지만, AI는 그렇지 않습니다. 설사 개방을 한다 해도 모두가 이를 쉽게 사용할 수는 없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AI를 활용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 텐데, 이는 지금의 인터넷보다 더 큰 격차를 가져올 것입니다.
특히 AI의 발전은 노동시장에도 영향을 주고 분배시스템의 격차도 가져올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모두 정치적으로 풀어야 내야 합니다. 제 개인적 생각은 산업을 먼저 발전시키고 발생하는 이익의 분배는 모두에게 후하게 하는 방식을 선택하면 해결될 것이라고 보입니다. 규제보다 발전을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 제 견해입니다.”
- AI로 인한 일자리 변화는 어떨까요.
“AI는 노동시장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직업보다 직무의 변화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예를 들어 변호사라면 일을 줄이기보다는 수요 일부를 AI가 대신할 수는 있을 것으로 봅니다. 지금 변호사 시장은 일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일은 많지만 높은 비용 때문에 법률소비자들이 변호사를 고용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문제를 AI가 해결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서비스 개발과 생산이 가능해지고, AI와의 협업 시스템도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특히 정신과 치료, 법률서비스, 세무서비스 등에 AI는 적극 사용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추가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정부가 개별 규제를 일일이 찾아내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감사권의 비대화 등으로 야기된 정부 조직의 소극적이고 비효율적인 태도를 개선해야 규제를 혁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출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껏 정부 조직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지나치게 요구해왔지만, 앞으로는 정부조직의 효율성을 보다 강조해야 합니다. 열심히 하는 공무원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적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채찍보다 당근으로 업무의 적극성을 불러일으켜야 할 상황에 놓였습니다.
4차산업혁명위 활동을 하면 할 수록 느끼는 점이 문제는 기술이 아닌 제도라는 것입니다. 미래를 알기 위해서는 과거를 되돌아 볼 필요도 있습니다. 조선시대 우리는 어땠습니까? 문을 걸어 잠그고 새로운 문물을 너무나 늦게 받아들였습니다. 반면 일본 등 신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국가들, 제도를 바꾼 나라, 마인드를 바꾼 나라는 안정적 산업화 시대를 맞았습니다. 우리도 이제 보다 개방적인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이상용 교수 약력
▲서울지방법원 판사 ▲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한국인공지능법학회장 ▲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 ▲ 한국블록체인법학회 부회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