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로 하노이 간 까닭 3… 경호 용이, ‘3대 백두혈통’ 존재감 과시, 中 북미회담 주역 등장
“설마 했는데 거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3일 전용열차로 평양을 출발할 당시 외교가의 반응이었다. 물론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이 1958년과 1964년 기차 편으로 베트남을 다녀갔고,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1년 한술 더 떠서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24일간의 대장정을 감수한 전례가 있긴 하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본 게임인 정상회담을 앞두고 비행기로 4, 5시간이면 닿을 하노이까지 4,000㎞에 육박하는 거리를 꼬박 사흘간 열차로 이동하며 진을 빼는 강행군을 벌인 건 겉으로 보면 무모한 일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수지맞는 장사였다. 모양새가 좀 빠지긴 했지만, 김 위원장은 자신의 신변안전을 최대한 보장하면서 북한의 리더로서 전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다. 특히 길을 터준 혈맹 중국과의 관계를 한없이 돈독히 한 것은 27, 28일 담판을 벌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무력시위나 다름없다.
김 위원장이 전용기 참매 1호를 포기하고 움직이는 요새로 불리는 열차를 택한 건 무엇보다 경호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김 위원장의 기차는 호화로운 객실과 함께 보안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중무장돼있다”고 전했다. 소형헬기도 띄울 정도다. 동시에 호텔을 능가할 만큼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어 아무 불편이 없다고 한다. 잔뜩 무장한 열차의 무게를 감안하다 보니 시속 60㎞ 남짓한 느린 속도로 운행할 수밖에 없었다.
각국 언론이 앞다퉈 김 위원장의 동선을 실시간으로 타전하면서 3대 백두혈통의 정통성을 부각시키는 성과도 거뒀다. 마치 선대의 발자취를 되짚어 따라가는 듯한 행보는 향후 두고두고 북한 주민들을 선동할 수 있는 호재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북미정상회담 당시 중국의 문양이 선명하게 찍힌 항공기를 타고 가는 바람에 대내외적으로 망신을 당한 전례를 감안하면 열차 이동은 불가피한 선택일 수도 있다.
김 위원장 열차가 톈진(天津), 우한(武漢), 창사(長沙), 난닝(南寧), 핑샹(憑祥)을 거쳐 중국 북부에서 남부까지 대륙을 관통한 것은 식전행사나 마찬가지다. 뒤에 빠져 있던 중국이 멍석을 깔아주면서 자연스레 이번 회담의 주역으로 전면에 등장했다. 올해 수교 70주년을 맞은 양국이 과시한 최고의 찰떡공조인 셈이다. 다만 중국 개혁개방의 모범사례인 광저우(廣州)를 둘러가지 않고 최단 경로를 따라 하노이로 향하면서 북한 내부를 향해 메시지를 던지기보다는 김 위원장 개인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데 초점을 맞췄다.
이에 줄곧 잠잠하던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25일 “김 위원장이 중국 대륙을 통과하는 건 양국의 혈맹관계를 세계에 보여주는 것”이라며 “우리가 이번 회담을 기획한 이해당사자”라고 거들고 나섰다. 중국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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