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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어음 투자로 1600억 날린 증권사들… “사기다” vs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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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어음 투자로 1600억 날린 증권사들… “사기다” vs “아니다”

입력
2019.02.27 04:40
수정
2019.02.27 17:0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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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투자증권이 판매한 ABCP 구조도. 그래픽=김경진 기자
한화투자증권이 판매한 ABCP 구조도. 그래픽=김경진 기자

복잡한 금융상품의 전문가 집단을 자처하는 대형 증권사들이 물고 물린 1,600억원대 어음(중국 자산유동화기업어음ㆍABCP) 부도 사건을 둘러싸고 금융투자업계에 여진이 지속되고 있다. ABCP를 판매한 한화투자증권은 여전히 “우리는 단순 중개 역할(주관사가 아닌 주선사)이었기 때문에 법적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한화투자증권이 ABCP 판매 과정에서 투자자들에게 ‘중요 정보를 일부러 알리지 않았는지’를 집중적으로 캐고 있다.

◇믿었던 중국기업 회사채 부도

26일 경찰과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해 5월 8일 한화투자증권은 특수목적회사(SPC) ‘금정제십이차’를 통해 중국 에너지기업 중국국저에너지화공집단(CERCG)의 역외 자회사(CERCG캐피탈)가 발행한 회사채 1억5,000만달러 어치를 담보(기초자산)로 삼은 ABCP(1,646억원)를 발행해 현대차증권(500억원), KB증권(200억원) 등 국내 증권사들에게 팔았다.

ABCP는 만기에 원리금을 돌려주지 못해도 투자자가 담보를 챙기거나, 담보를 현금화시켜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그래서 보통 ABCP를 발행할 땐 신용도 높은 자산이 담보로 제공된다.

당시 업계에선 이 ABCP의 담보인 CERCG캐피털 회사채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CERCG 본사의 ‘지급보증’ 조건이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채에 문제가 생겨도 CERCG 본사가 대신 돈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하는 셈이었다.

하지만 한화투자증권이 ABCP를 판매한 지 3일 만에, CERCG 본사가 지급보증한 또 다른 자회사(CERCG오버시즈캐피털) 회사채가 부도를 냈다. CERCG 본사가 지급보증을 이행하지 않은 탓이었다. 이에 CERCG캐피털의 회사채도 CERCG 본사 지급보증이 이행 안 될 가능성이 높아져, 덩달아 부도 위험이 높아졌다.

실제 약 5개월 뒤 ABCP의 만기가 돌아온 작년 11월 9일, CERCG캐피탈은 원리금을 채권자들에게 돌려주지 못했고 CERCG 본사는 지급보증을 이행하지 않아 해당 회사채는 부도가 났다. 자연히 ABCP도 부도가 났고, 이를 사들인 국내 증권사들은 투자금 전액을 날리고 말았다.

◇사기냐 아니냐, 경찰 수사에 관심

소규모 업체가 아닌 유수 증권사에게 파생상품(ABCP)을 샀다가 거액을 날린 대형 증권사들은 한화투자증권에게 “주관사로서 책임을 지라”고 요구했다. 이 중 현대차증권은 아예 ABCP 판매 실무자를 특정경제범죄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고소했고, 수사에 착수한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압수수색까지 진행했다.

그럼에도 한화투자증권은 “우리는 판매를 주선했을 뿐”이라며 법적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의 판단은 다르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 관계자는 “판매 과정에 중요 정보를 알리지 않고 속이는 행위가 있었는지가 중요하지, 주관사인지 아닌지 여부는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회사채에 대한 CERCG 본사의 지급보증이 실제 이행될 수 있었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실적으로 CERCG 본사의 지급보증이 이행되려면 중국외환국(SAFE)의 승인이 필요하다. 중국은 자본 유출입을 철저히 통제하기 때문에, 돈이 중국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지급보증의 경우 반드시 허가를 받게 한다. 그런데 SAFE에는 CERCG 본사의 지급보증을 승인한 이력이 없었다. 즉, CERCG의 지급보증은 실제로 전혀 효과가 없는 지급보증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한화투자증권이 ABCP 판매 당시 제공했던 ‘투자설명서’에는 SAFE 관련 설명은 없이 CERCG 본사의 지급보증이 돼 있는 것으로 나와 있다. ABCP를 샀던 한 증권사 관계자는 “한화투자증권이 국내에선 생소한 SAFE 관련 규정에 대한 설명 없이, 마치 효과 있는 지급보증이 돼 있는 것처럼 해놓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화투자증권 측은 “CERCG 본사의 지급보증은 효과가 있고 SAFE 승인 여부와 관계 없다”고 맞서고 있다.

경찰도 이 부분을 집중 수사하고 있다. 한화투자증권 ABCP 판매 실무자가 △이런 사실을 얼마나 인지하고 있었는지 △알고 있었다면 왜 투자자들에게 이를 알리지 않았는지다. 경찰 관계자는 “이 두 가지 상황이 사실로 확인되면 해당 실무자는 사기죄 구성 요건인 ‘기망행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지금까지 판매사와 피해 증권사 직원에 대한 참고인 조사를 상당 부분 진행했고, 판매 실무직원의 피의자 소환 조사를 남겨놓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한화투자증권의 관리ㆍ감독 부실에 대해서도 혐의가 드러나면 보고 라인까지 수사를 확대할 수 있다”고 여운을 남겼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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