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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한국의 서비스는 친절해

입력
2019.02.27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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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출장을 다녀왔다. 장기 비행이었는데, 주최 측에서 국적기 항공권을 발행했다. 국적기는 대체로 편하지만, 딱 하나 몹시 불편한 점이 있다. 바로 과잉 친절이다. ‘아니, 뭐 이렇게까지’싶을 만큼 상냥하다.

누군가 원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런저런 매뉴얼이 있어 그리되는 것이겠지만, 열몇 시간 동안 한결같이 웃는 얼굴을 마주하는 일이나 귀국 며칠 후 체크인 담당자의 손편지를 받는 일에는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버리자니 미안하고 쓴 사람의 고생을 생각하면 착잡하다. 누가 생각한 서비스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비행기만이 아니다. 어떤 서비스들은 지나치게 친절하다. 핵심 업무에 필요한 것 이상으로 친절하다. 달리 말하면 노동 강도가 불필요하게 높다. 안전하고 편리한 교통수단을 샀는데, 그림으로 그린 듯이 웃으며 사근사근하게 대하는 여성까지 함께 제공하려 드는 사업장들이 있다. 보통 여성 비율이 높은 서비스 산업 노동들이다.

설상가상으로, 판 깔아주니 설치는 것인지 과잉 친절이 있는 곳에는 늘 과잉 무례도 있다. 이번에도 그랬다. 너무나 많은, 정말 너무나 많은 승객들이 승무원에게 반말을 했다. 노동자는 아주 길고 조곤조곤 말하고, 소비자는 문장을 제대로 끝맺는 성의조차 보이지 않고 단어만 툭 내뱉는 대화가 계속 들린다. 일방적이고 무례하다. 경험적 편견을 보태자면, 대부분의 성인 중년 남성들은 자기보다 젊어 보이는 여성 노동자에게 완전한 청유형 문장을 쓸 줄 모르는 것 같다.

주요 업무에 더해 친절함, 미소, ‘좋은’ 서비스가 있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불친절한 것보다야 친절한 것이 낫다. 그러나 친절도 서비스라면, 친절이라는 서비스가 계급이 아니라 동등한 사람 사이의 계약이라는 규칙이 분명하고 가시적이었으면 한다.

일단, 친절이라는 추가적인 노동에 확실한 대가가 지급되었으면 한다. 호텔이나 항공기에서 받는 손편지를 쓰는 시간과 노력이 업무시간에 포함되어 있을까? 대체 이건 언제 쓰는 걸까? 나는 호텔에서 3박을 하며 3박 내내 체크인 카운터부터 객실 담당자까지, 나와 만난 모든 서비스 노동자들의 손편지를 받은 적도 있다. 숙박객이 나 한 사람이 아닌데, 호텔리어의 일과는 모르지만 휴게시간이나 퇴근 후에 계속 써야 다 쓸 수 있는 분량일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애당초 필요한 일인지도 상당히 의문인데, 노동자에게 충분한 업무시간과 급여가 주어지는 것 같지도 않으니 편할 리 없다.

둘째, 서비스의 한계가 명확했으면 한다. 이는 노동자가 아니라 소비자가 사회의 일원으로서 함께 애쓸 점이고, 기업이 고용한 노동자를 보호해야 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반말, 그놈의 반말부터 일단 어떻게 좀 했으면 좋겠다. 내가 돈을 냈기 때문에 만난 사람이라고 해서 반말을 하면 안 된다. 웃는 낯으로 나를 대하는 사람이라고 얼씨구나 하고 부적절한 농담을 해서도 안 된다. 나에게 대여섯 시간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와 나는 농담 따먹기를 할 만큼 친한 사이가 결코 아니다. 서비스 노동자에게 추근거려서도 안 된다. 큰 일이 아닌데 고함을 질러도 안 된다. 이런 부적절한 일은 결국 기업이 묵인하기 때문에 계속 발생한다. 노동자가 어떤 행동에는 참지 않아도 되고, 친절하지 않아도 된다는 보호 기준이 있어야 한다. 서비스의 한계를 정한 매뉴얼이 필요하다. 존중이라는 사회적 규칙이 사근사근함보다 명확히 우선해야 한다. 이것은 다른 소비자들을 위해서도 필요한 정리다.

이 모든 것 없는 ‘한국의 서비스는 친절해’는 착취일 뿐이다. 편하지 않을 뿐 아니라 편하게 느껴질까 봐 두렵기까지 한 경험이다. 어쩔 수 없이 소비를 하면서 착취에 발을 들이게 된다.

정소연 SF소설가ㆍ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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