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퇴근 무렵, 기자는 광주시가 보내온 이메일을 열어보곤 실소를 금치 못했다. 26일자 신문에 보도하기 앞서 인터넷에 게재한 본보의 ‘광주환경공단 이사장 공모 또 악취’ 보도에 대한 시의 해명자료였다. 요지는 “서류심사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지원자가 면접에서 최고 점수를 부여 받은 것은 서류심사와 면접심사가 상호 관련성이 없는 별개의 심사기준을 적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과연 그럴까?
사소한 대목은 접어 두더라도 서류심사와 면접심사에 별개의 심사기준이 적용된다는 부분은 그냥 넘어가기 어려웠다. 현행 광주환경공단임원추천위원회운영규정(11조)에 따르면 세부심사기준은 서류심사용과 면접심사용으로 구분돼 있지 않다. 기업경영능력, 리더십, 경영혁신을 위한 개혁 지향적인 의지와 추진력, 관련사업에 대한 전문지식과 이해력, 기업성과 공익성을 조화시켜 나갈 수 있는 능력 등 5개 심사항목에 대한 심사기준만 있을 뿐이다. 응시자격요건을 갖추고 제출 서류에 이상이 없는 지원자에 대한 적격성을 이들 5개 항목을 기준으로 서류심사와 면접 방식으로 평가하도록 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게 서류심사 평가요소는 5개 심사항목(각 항목에 20점 배점)과 똑같다. 면접심사 평가도 서류심사 평가요소의 5개 심사항목을 20개 항목으로 좀더 세분화했을 뿐이다. 서류심사와 면접심사는 상호 관련성이 없다는 시의 주장이 억지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면접심사에서 심층 평가를 위해 세분화한 심사기준을 적용했더니, 서류심사에서 꼴등을 한 지원자가 1등을 해 이사장 후보로 추천됐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6년간 광주환경공단 상임이사를 지냈던 인사와 전 환경부 고위 간부 등 경쟁 지원자들보다 자질이나 능력이 뒤진다는 평가가 나오는 환경운동단체 출신 해당 지원자가 초능력을 발휘한 것도 아닐 텐데. ‘2차 면접심사 점수에 1차 서류심사 점수가 합산되지 않는다’는 시의 해명은 너무 빈약하다.
시가 이처럼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공모 과정에서부터 사전내정설의 당사자였던 지원자가 결국 후보로 추천되면서 이용섭 광주시장과 임원추천위원회간 교감설 등이 불거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나 다를까, 시의 해명자료에 숨은 뜻은 “기사에 잘못된 부분이 있으니 수정해달라”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상관에 대한 충성심에 사로잡혀 이 시장의 심기만을 걱정한 듯 보였다. 기사의 직접 이해당사자인 광주환경공단은 “다 맞는 말인데 우리가 왜 해명자료를 내냐”는 반응을 보인 터라, 시의 행동은 더욱 과잉충성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이 시장이 혁신과 3대 인사원칙(전문성ㆍ청렴성ㆍ방향성)을 강조하며 공공기관장 물갈이 작업을 펼친 지 7개월이 지난 오늘, 민선 7기 광주시의 현주소이다.
자신들에게, 특히 이 시장에게 비판적인 기사가 시로서는 반가울 리는 없다. 그렇다고 설익은 해명자료로 문제를 덮으려는 태도는 볼썽 사납다. 지금 시가 해야 할 건 이 시장의 심기를 살피는 일이 아니다. 공모 때마다 사전내정설과 자질 논란에 휩싸인 인사를 이사장 후보로 지명한 이 시장에게 간언(諫言)을 하든지, 아니면 차라리 침묵하는 편이 더 낫다.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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