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도전은 아름답다. 배우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장르나 캐릭터의 변주를 통해 배우는 자신의 역량을 스스로 시험하는 것은 물론, 자청해서 심판대에 오르는 것이다. 단연코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이정재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배우다. 지금까지 다양한 작품을 통해 그것을 증명해왔다. '모래시계' 이후 인기의 정점에 있을 때 코미디 작품에 출연하고, 불륜을 다룬 영화도 선택했고, 지고지순한 순애보도 그렸다.
최근 기자와 만난 이정재는 "어릴 때부터 작품 선택을 하는데 있어서 캐릭터를 다르게 보여드리고 싶은 열망이 꽤 많이 있었던 거 같다"고 털어놨다.
"'모래시계' 백재희 캐릭터를 사람들이 많이 좋아해줬는데 그 이미지를 벗어나고 싶어서 무리한 코미디 '박대박'에 출연도 했죠. 좋은 다른 시나리오를 고사하고 유독 그것을 하려고 한 것도 백재희에 대한 이미지를 벗어나 다른 걸 보여주려는 마음에서 선택한 거였어요. 그 당시엔 계속 그랬던 거 같네요. 불륜 영화인 '정사'도 하고, 약간 얄미움의 대상으로만 끝날 수 있는 '태양은 없다'도 했었고요. 순애보가 담긴 '선물'도 했고요."
그는 당시 자신의 연기가 "어설픈 구석이 있었다"고 자평했다. 캐릭터를 표현해내는 능력이 떨어지다 보니 장르 혹은 캐릭터에 과욕을 부린 거 같다며 스스로를 돌아봤다.
"큰 맥락으로 놓고 보면 지금이나 그때나 (나의 생각이) 별로 변한 건 없는데, 그때보다는 지금이 좀 더 표현을 하는데 있어서 매끄럽게 하니까 좋은 얘기도 듣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이정재는 '열일' 하는 배우 중 하나다. 다작을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냐고 묻자, 그는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1년에 개봉하는 한국영화 편수가 많아졌어요. 지금은 한 달에 몇 개씩 들어오죠. 제가 할 수 있는 걸 찾기에 좀 더 (작품의) 양이 많아진 거 같아요. 그래서 일을 많이 하게 되는 이유도 있고, 요즘엔 좋은 시나리오가 많더라고요. 글을 참 잘 쓰는 거 같아요. 하고 싶은 시나리오가 많으니까 좀 더 일을 많이 하는 거죠."
'사바하' 역시 그에겐 새로운 도전이었다. 결론적으로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장재현 감독님의 차기작을 영화를 하는 제 입장에서도 궁금하고 기다렸는데, 시나리오를 건네면서 제안을 해주신 걸 감사하게 생각해요. 시사회 때 마지막 완성본을 보고 나니까 '하길 잘했구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새로운 장르지만, 장재현 감독이 아주 뛰어날 정도로 잘 찍는 분야라는 걸 전작에서 느꼈기 때문에 최대한 맞추려고 노력을 했어요."
언론시사회 당시 장 감독은 눈물을 쏟아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정재 역시 현장에서는 그 정도로 감독이 부담을 느끼고 있는지는 몰랐다고 털어놨다.
"감독님이 내색을 안 해서 몰랐죠. 다들 호흡이 너무 잘 맞아서 촬영장이 즐거울 정도로 수월하게 촬영을 해나갔거든요. 감독님의 진심어린 눈물을 보고 나니까 '부담이 많았나 보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사바하'에서 박목사(이정재)는 진지한 와중에도 가벼운 웃음 코드를 놓치지 않는 인물이다. 마냥 무겁기만 한 인물이 아니어서 이정재와 더 어울렸다는 평가도 있다.
"시종일관 무겁게만 진행되면 왠지 지루해하지 않을까 (감독이) 생각한 거 같아요. 박목사가 이야기를 스타트 할 때는 가볍게 했으면 좋겠단 얘기를 했고, 잘 표현이 된다면 중간중간마다 유머러스한 표현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도도 있었어요. 저 역시 공감을 했고 최대한 하고자 하는 의도를 잘 반영하려고 했죠."
그렇다면 박목사를 연기하면서 이정재가 특별히 준비한 게 있는지 물었다.
"강연을 참고했어요. 기독교 채널이나 불교 채널을 보면서 어찌 강연을 하는지 봤죠. 또박또박 얘기하고 귀에 쏙 들어오게 말하더라고요. 저런 게 박목사랑 어울리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이정재가 박목사 캐릭터에 애정을 갖게 된 특별한 이유도 있었다.
"초반엔 목사라는 양반이 속세에 젖은 속물 근성을 보여주잖아요. 하지만 후반으로 달리면서 이 사람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게 되죠. 마지막까지도 상처 입은 영혼의 인간을 보듬어주려고 하는 행동을 보며 '역시 이 사람은 선함을 쫓는 목사구나'라고 느껴져서 시나리오를 그렇게 쓴 점이 좋았습니다."
유수경 기자 uu8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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