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으로 북한의 지도자 유고 및 핵무기 발사 상황을 그린 한국 영화 ‘강철비’에서는 극중 ‘위원장’으로 불리는 인물이 차고 있는 시계가 핵무기 발사 허가를 위한 암호발생장치로 묘사된다. 현실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어떨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핵가방’처럼 핵무기 통제권을 곁에 지닌 채 베트남 하노이 회담장에 나타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렇다면 26일 베트남에 도착한 김 위원장은 핵무기 통제를 위해 어떤 장비를 갖고 왔을까. 현재로서는 김 위원장이 ‘핵가방’ 형태로 발사 명령권을 보유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전문가들은 굳이 가방이 아니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핵무기 통제권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은 높게 보고 있다. 호주 그리피스대의 북한 전문가 앤드루 오닐은 “북한의 보안통신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김 위원장이 해외에서도 북한의 핵무기 지휘권한을 쥐고 있는지는 확언하기 어렵다”면서도 “현재 김 위원장의 권력 집중도가 상당한 만큼 그가 유사시 명령권을 행사한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북한 전문 웹사이트 38노스의 북한 관찰 담당 전문가 마이클 매든은 “북한 내부에 핵무기 통제권을 전담하는 특수한 시스템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했다. 이 경우 김 위원장은 해외에서는 직접 핵무기를 통제할 수 없다. 대신 몇몇 측근에게 핵무기 통제권을 맡기고 필요시 본국으로의 비상연락을 통해 명령을 내릴 수 있다. 김 위원장이 통제권을 맡겼을 만한 인물로 꼽히는 이들은 북한 내 실질적 권력 2인자로 불리는 최룡해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과 상징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이다. 김 위원장이 평양을 떠나면서 김영남 위원장에게 귓속말을 하는 장면이 포착됐는데, 이것이 신뢰의 표현이라는 관측도 있다.
◇미국ㆍ러시아, 대통령 곁에 늘 핵가방
최고 통수권자가 핵가방을 공개적으로 들고 다니는 국가는 미국과 러시아다. 어디서든 핵 발사 명령이 가능함을 전시하려는 목적으로 들고 다닌다. 트럼프 대통령이 “세상에서 가장 큰 핵 단추”라고 자랑한 ‘뉴클리어 풋볼(nuclear football)’은 미국 대통령 옆을 항상 따라다니는 군 소속 수행원 부관이 지니고 있는 가방이다. 가방 안에는 자신이 대통령임을 증명할 수 있는 암호카드 ‘비스킷’과 소형 통신장치, 핵전쟁 전략 및 주요 표적에 관한 정보가 포함된 ‘블랙 북’이 있다. 러시아는 소련 시절인 1980년대부터 ‘체게트’라는 이름의 가방을 러시아 최고 통수권자와 동행시켰다.
프랑스는 공식적으로 핵가방은 없지만 핵무기를 포함해 다양한 공격 옵션이 포함된 명령 시스템이 대통령과 동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 역시 총리에게 발사 명령권이 있다. 잠수함에만 핵미사일을 배치했기 때문에, 총리관저 내부에는 왕립해군 사령부와 영상으로 연결되는 폐쇄통신망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 총리는 핵 공격으로 인한 자신의 유고를 대비해 명령이 담긴 ‘최후의 수단 서신(Letter of last resort)’을 써 놓는 것이 관례다. 총리는 ▲보복 핵 공격 여부 ▲미국이나 호주 등 동맹국으로의 대피 여부 등 몇 가지 옵션 중에 하나를 선택해 서신을 작성하게 된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