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화성시 우정읍 일대
군공항 이전 후보지로 선정되자 법적 허점 노린 주택 무더기 건설
“주말에 쉬려는데 뭐가 문제냐” 일부 거주자들 항변하기
25일 오후 경기 화성시 우정읍 원안2리 마을회관 앞.컨네이너 박스보다 조금 큰 듯한 조립식 패널 형태의 단층 주택 24개 동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아직 공사가 마무리 되지 않은 듯 건물의 문은 열려 있고, 경계석 등 건축용 자재들이 바닥 곳곳에 놓였다. 실내는 화장실인 듯한 공간 하나와 원룸 형태로 돼 있었다.
주민들은 울창한 소나무가 즐비했던 곳인데 지난해 가을부터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하더니 지금에 이르렀다고 입을 모았다.
마을회관에서 300m 더 안쪽에 있는 원안3리로 들어서자 회관 앞에 지어진 건물과 똑같은 형태의 단층 주택 30여개가 마찬가지로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는 1m도 채 안됐고,창문은 어른 눈높이 정도에 설치돼 있어 안쪽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전형적인 시골 마을인 이곳과 소규모 주택은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최근 들어 화성시 우정읍 화수리,원안리,호곡리 등 화옹지구 일대 마을 곳곳에 이런 소규모 주택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다. 소규모 주택이 갑자기 늘어난 것은 우정읍 일대가 수원군공항 이전 후보부지로 선정되면서다.앞서 국방부는 2017년 2월 수원전투비행장 이전 예비후보지로 이 곳을 선정한 바 있다. 화옹지구 일대 14.5㎢ 규모로 총 사업비는 6조9,990억원에 이른다.
마을회관에서 만난 한 주민은 “작년 가을부터인가 공사 인부들이 와서 나무들을 모두 잘라내고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며 “집 같지도 않고 그냥 와서 잠만 자는 정도의 집을 왜 짓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마을회관에 있던 주민들은 보상을 노린 것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냈다.
함께 있던 다른 주민은 “보상 받으려고 저러는 거 우리도 다 알고 있다”며 “물론 공항이 안 들어오는 게 맞지만 만약 들어와 보상을 해준다면 저들보다 수 십 년을 더 거주한 우리가 더 많이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도 “준공도 안 나서 인지 유령집 갔다”며 “괜히 지역주민 갈등을 야기하고 마을 이미지만 나빠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화성시도 뒤늦게 사태를 파악, 대책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여의치 않은 상태다. 법적 절차대로 이뤄지다 보니 강제 철거도,인허가 취소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시에 따르면 이 일대 개발행위가 접수되기 시작한 것은 2017년 말부터다. 이후 올 1월 말 현재까지 개발행위허가를 받은 곳은 화수리 37건, 원안리 32건, 호곡리 9건, 원안리·호곡리 18건 등 96건이다. 개발행위허가를 받은 토지들은 대부분 200~250㎡ 규모지만 실제 주택은 50㎡(건축선 기준) 내에 소규모로 지어졌다. 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이유다.
이는 일정 규모 이상인 경우 건축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토지를 분할 해 소규모로 주택을 지을 경우 허가사항이 아닌 신고사항이기 때문에 법적 제재를 받지 않는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실제 이들 허가 지역에 지었다며 신고 된 소규모주택은 화수리에 37건, 원안리에 32건, 호곡리에 6건 등 모두 75건이다.
현재로서는 군공항 이전, 보상문제 등이 확정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 다만 이전이 확정돼 본격화 되면 거주자들에 대한 보상이 이뤄지고,통상 사업 공고 1년 전 건축한 주택은 토지와 주택 보상, 이전비용, 이주자 택지 등 막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노린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화성시는 ‘군공항 거짓 정보, 부동산 투기 조장, 유언비어에 속지마세요, 화성시 서해안의 성장은 투기가 아닌 환경입니다’라는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마을 곳곳에 부착 사태 확산에 나서는 모양새지만 역부족이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한 50대 여성은 “수원과 화성에 거주하는 동호인들끼리 주말에 고기 구워먹고 쉬려고 지은 집인데 뭐가 문제냐”며 “인근에 궁평항이 있고, 친정 엄마 집과 가까워 겸사겸사 매입한 것인데 왜 투기세력 취급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직 준공이 나지 않았으니까 사람이 없는 것이지, 준공 나면 주말에 와서 머물다 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게 시의 설명이다.
시 관계자는 “관련 부서가 현장을 확인한 결과 군 공항 이전에 다른 보상을 위한 전형적인 수법으로 보인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하지만 허가 요건을 갖춰 제출된 서류를 시 차원에서 반려하거나 불허할 수 없고,이제와서 강제 철거도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민들이 보상 등 유언비어 속지 않고,투기 조장행위를 막기 위해 대대적인 홍보에 나서고만 있는 상태”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향후 준공 후 전입신고나거주사실 확인 등을 통해 투기 세력인지 여부를 파악할 것”이라며 “불법이 확인되면 주민등록 말소 등의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화성=임명수 기자 s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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