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ㆍ호찌민 동석했던 공연장서
김정은 트럼프 공연 관람설도
자동차 생산기업 빈패스트 시찰
하노이 북부 박닌성 단지 찾아
삼성전자 공장 방문 여부도 주목
2차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베트남 하노이 체류 일정이 사실상 그가 권력세습의 정통성으로 삼아온 할아버지 김일성 전 주석의 1958년 행보를 답습하는 내용인 것으로 확인됐다. 항공편 대신 60시간 이상 걸리는 육로를 선택한 것은 시작에 불과하며, 하노이에 들어선 뒤 떠날 때까지의 동선이 문화와 경제분야에서 광폭 행보를 보인 할아버지 때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특히 27일 저녁에는 김 전 주석도 방문했던 하노이 오페라하우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공연 관람, 이어 인근 영빈관에서의 만찬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25일 하노이 외교가 소식통과 현지 온라인 매체 징에 따르면 북미 정상회담을 제외한 김 위원장의 하노이 핵심 일정은 베트남 최고 권력층과 함께하는 27일 저녁의 공연관람 및 3월1일 공업지대 시찰이다. 하노이 소식통은 “김 위원장의 공연 관람은 당시 김 주석이 호찌민 주석 등과 함께 하노이 오페라하우스에서 양측 예술단의 공연을 관람했던 일정을 참고한 것”이라고 전했다. 김 위원장이 할아버지 후광을 정권 유지에 적극 활용하고 있는 만큼 문화 이벤트를 통한 베트남과의 친교 활동도 61년 전 것을 답습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27일 북한과 베트남 수뇌부의 합동 공연 관람과 만찬 징후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지난 23일 특별열차로 평양을 출발한 김 위원장 일행에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포함된데다가, 김 위원장의 의전 총책인 김창선 국무위 부장도 수시로 하노이 오페라하우스를 둘러보고 있다. 현지 소식통은 “베트남 현지 방송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동석 관람 가능성에도 대비해 (촬영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는 또 “김 위원장과 베트남 수뇌부의 공연 관람에 동참하지 않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을 본 딴 ‘미러룸’으로도 유명한 이 건물에서 김 위원장과 별도 회동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며 “인근 영빈관은 이들의 환영 만찬장으로 사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1주일 이상 보수공사가 진행중인 영빈관은 전날까지 내부 바닥 카펫ㆍ변기 교체에 이어 이날 외부 조명장식이 교체됐다. 김 위원장 숙소는 이날 오후 늦게 멜리아 호텔로 확정됐다.
61년 전 김 주석의 행적 자료 중에 유독 ‘산업 현장 방문’ 기록이 많다는 것도 김 위원장의 이번 일정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김 주석은 당시 하노이 인근 남딘에 위치한 베트남 북부 최대 방직공장과 최초 베트남ㆍ북한 우호협동조합을 방문했다. 이어 64년 비공식 방문 때에는 하노이에 있는 한 기계 공작소, 하노이 근교의 한 협동조합을 호찌민 주석과 함께 찾았다. 특히 두 번째 방문에서는 할롱베이 선상 유람선도 즐긴 것으로 확인된다.
김창선 부장이 지난 17일 삼성전자 등 대형 공업단지가 들어서 있는 하노이 북부 박닌성, 베트남 최초의 고유 자동차 생산 기업인 빈패스트 등이 있는 하이퐁을 둘러본 것으로 알려진 만큼 김 위원장의 방문 가능성도 높다. 공업지구 방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베트남 측과 정상회담을 갖는 27일이나 3월1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 블룸버그통신도 김 위원장이 자동차 생산업체 빈패스트를 27일 방문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예상대로 이들 시설을 둘러볼 경우 북한 경제를 개혁ㆍ개방으로 이끄려는 의지를 대내외에 더욱 확실히 보여주는 효과가 기대된다. 특히 삼성전자 방문은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 남북 경제협력 과정에서 삼성, 현대차 등 한국 대기업의 참여를 그만큼 고대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현지 소식통은 “삼성전자 공장 방문이 이뤄진다면 3월 1일이나 27일에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 밖에도 김 위원장이 경호 수준 약화 위험성을 무릅쓰고 대중에게 다가서는 장면을 연출할지 여부도 주목된다. 김 전 주석의 경우 61년 전 하노이 시내를 지붕이 없는 차를 타고 지나며 환영 나온 시민들에게 손을 흔든 바 있는데, ‘인간 방패’ 경호원들을 동원, 이와 비슷한 장면이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이번 베트남 방문이 북미회담을 통해 새로운 관계 구축을 위한 것인 만큼 군사학교, 군 박물관 등 군 관련 시설을 방문했던 김 전 주석의 행적은 따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하노이=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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