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나 도쿄’ 한정현 작가
황예인 ‘스위밍꿀’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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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줄리아나 도쿄' 낸 한정현 소설가(오른쪽)와 스위밍꿀 출판사의 황예인 대표. 류효진 기자
시작은 메일 한 통이었다. “신인 작가의 책도 출판하시나요?” 생각해본 적은 없었지만, 안될 것도 없었다. 일단 만나보기로 했다. 해가 쨍 하고 맑은 날,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등단 3년 차의 신인작가와 이제 막 두 권의 책을 펴낸 1인 독립 출판사 대표가 만났다. 한정현 작가의 첫 장편소설 ‘줄리아나 도쿄’가 황예인 대표의 ‘스위밍꿀’ 출판사에서 출간되기 1년 전인 2017년 12월의 이야기다.
“문예지에 발표한 단편들을 엮어 민음사에서 소설집을 내기로 이미 계약을 한 상태였어요. 그것과는 별개로, 소설의 소재가 된 일본 도쿄의 나이트클럽 ‘줄리아나 도쿄’를 우연히 알게 됐어요. 그리고 이 소설은 지금 꼭 쓰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때 마침 재미있게 읽은 정지돈 작가의 책이 나온 스위밍꿀 출판사 대표님께 무작정 메일을 드렸죠”(한정현)
“그전까지 딱히 ‘신인을 발굴해야겠다’거나, 그런 소임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그 때 한 작가가 본인이 쓴 단편 두 편을 메일로 보냈는데 그 중 ‘괴수 아키코’라는 작품이 재미있더라고요. 한 작가와 해볼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줄리아나 도쿄’는 기획 아이디어 정도만 있었던 상태지만요. 이렇게까지 긴 분량이 될 줄은 몰랐고요.”(황예인)
한 작가는 201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문예지에 간간이 소설을 발표하긴 했지만, 커다란 주목을 받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황 대표는 문학 전문 대형 출판사인 문학동네를 그만두고 나와 1인 출판사를 차리고 2년 만에 소설 두 권을 겨우 낸 때였다. 어느 한쪽도 서로에게 ‘믿는 구석’이 돼 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반신반의하며 의기투합한 지 1년, 수 차례에 걸친 일본 현지 취재와 수십 차례의 교정 끝에 ‘줄리아나 도쿄’가 탄생했다. 누구의 촉이 더 좋았던 것인지 가릴 수 없지만, 다행히 소설은 호평을 받으며 꾸준히 독자와 만나고 있다.
‘줄리아나 도쿄’는 1990년대 실존한 나이트 클럽이다. 젊은 여성들이 커다란 부채를 들고 군무를 추던 곳으로, 송은이, 안영미 등 여성 개그맨들이 결성한 ‘셀럽파이브’가 추는 군무가 이곳에서 유래했다. 클럽이 주요 소재지만 화려한 춤과 음악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데이트 폭력과 성소수자, 미혼모, 기지촌과 성매매 여성, 전태일과 전공투 등 묵직하고 민감한 소재들이 교차한다. 저마다의 상처를 지닌 인물들이 서로를 따뜻하게 보듬는다.
내 맘이 꼭 네 맘 같았을 리가 없다. 작업하며 다툼은 없었을까. “그런 건 없었고…딱 한 가지 말이 점점 길어지더라고요(웃음). 신인 작가니까 혹시라도 피드백에 영향을 너무 받게 되진 않을까, 상처를 입진 않을까, 오해 없이 조심스럽게 다가가려고 하다 보니 교정 메일이 정말 한 없이 길어졌어요.”(황예인) “어느 날 대표님이 메일을 보내며 ‘원고로 승부하자’고 하는 거에요. 쓰면서 많이 힘들었는데, 소설의 가장 첫 번째 독자가 ‘할 수 있다’고 해주니까 제대로 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누군가 내 뒤를 든든히 받치고 있다는 믿음, 응원과 자극이 됐죠.”(한정현)
작가도, 출판사도, 이제 막 첫발을 뗐다. 두 사람은 그 첫걸음을 함께 했다. 각자 상상하는 서로의 미래는 어떤 걸까. “황 대표님이 1년에 책을 한 권씩 내니까 10년쯤 뒤에 펭귄 클래식처럼 제 책이 ‘스위밍꿀 클래식’의 세 번째 책이 되어 있으면 좋겠어요.”(한정현) “저는 목적지는 없어요. 작가들이 저와 책을 낸 뒤에 좋은 기운을 받아서 다른 출판사에서 책을 또 내고,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 다시 만날 수도 있겠죠?”(황예인)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김진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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