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ㆍ온라인 동시 공개 콘텐츠 전략 영화계 반감… 작년 칸서 ‘문전박대’
제작영화 ‘로마’가 감독상 등 3관왕… 총 트로피 4개, 할리우드 주류 부상
‘보헤미안 랩소디’ 말렉 남우주연상, ‘더 페이버릿’ 콜먼 여우주연상 수상
24일 오후(현지시간) 제91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감독상과 촬영상,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로마’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트로피 3개를 양손에 들고 감격스러워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EPA 연합뉴스

1, 2년 전만 해도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세계 최대 온라인 스트리밍업체(OTT) 넷플릭스는 영화업계 질서를 어지럽힌다고 손가락질 받았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선 문전박대를 당했다. 영화를 극장과 온라인에 동시 공개하는 넷플릭스의 콘텐츠 전략은 기성 영화인들의 강한 반감을 사기 충분했다.

하지만 1년 사이 대우가 확 달라졌다. 넷플릭스는 24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1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의 진짜 주인공이었다. 넷플릭스 제작 영화 ‘로마’는 10개 부문 후보에 올라 주요 부문인 감독상을 포함해 3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단편다큐멘터리상(‘피리어드, 엔드 오브 센텐스’)까지 포함해 넷플릭스가 이날 가져간 트로피는 모두 4개다. 전 세계 영상업계를 뒤흔들고 있는 넷플릭스가 할리우드 주류가 됐음을 선언한 셈이다.

‘로마’는 1970년대 초 멕시코시티의 로마 지역을 배경으로 가정부 클레오의 삶과 중산층 가정의 이야기를 그린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유년 시절 자신을 길러준 여성들에 대한 감사와 애정을 담은 자전적 영화로, 17년 만에 고국 멕시코에서 스페인어로 만들었다. 여성들의 연대, 백인과 원주민 간 계급 문제 등을 멕시코의 정치적 혼란상에 녹여낸 연출로 호평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넷플릭스 영화 최초로 세계 3대 영화제 최고상(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로마’는 정교한 사운드와 질감까지 느껴지는 영상미로 ‘반드시 극장에서 봐야 하는 영화’라는 평을 받았다. 넷플릭스 제공

‘로마’는 감독상 외에도 외국어영화상과 촬영상을 차지했다. 촬영까지 겸한 쿠아론 감독은 촬영상까지 수상하는 진기록을 썼다. 쿠아론 감독의 감독상 수상은 2014년 ‘그래비티’에 이어 두 번째다. 외국어영화의 감독이 이 상을 받기는 처음이며, 넷플릭스 영화로도 최초다.

쿠아론 감독은 세 차례나 수상 무대에 올라 출연 배우들과 스태프의 이름을 호명하며 기쁨을 누렸다. 감독상을 품에 안고선 “원주민 여성을 중심으로 한 이 영화를 인정해 준 아카데미에 감사하고 싶다”며 “노동권이 없는 전 세계 7,000만 여성 노동자 중 한 명인 주인공처럼, 역사의 배경으로 밀려난 이들을 조명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로마’는 작품상과 외국어영화상 동시 수상이 유력하게 점쳐졌지만 작품상 수상에는 실패했다. 미국 연예매체 할리우드리포터는 비영어권 영화에 대한 거부감, 스타 파워 부재 등을 이유로 짚으며 할리우드 내부에 여전히 존재하는 넷플릭스에 대한 반감과 견제 의식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넷플릭스의 약진은 부인할 수 없다. 김형석 영화평론가는 “넷플릭스가 자체 제작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 세계적인 감독들을 지원하면서 기존 할리우드 시스템에선 나오기 힘든 예술 영화들을 많이 선보이고 있다”며 “자본의 성격을 엄격히 따지지 않는 할리우드가 넷플릭스의 영향력을 인정하고 공존하는 길을 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넷플릭스는 지난달 미국영화산업협회(MPAA)에 OTT 회사 최초로 신규 회원사로 가입했다. MPAA는 월트 디즈니와 소니 픽처스, 워너 브러더스, 20세기폭스, 유니버설 스튜디오, 파라마운트 픽처스 등 6대 영화사만 회원으로 두고 있을 정도로 폐쇄적인 단체다. 디즈니가 20세기폭스를 합병하면서 생긴 빈 자리가 넷플릭스에 돌아갔다는 사실만으로도 할리우드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김 평론가는 “넷플릭스 영화를 다른 할리우드 영화들과 구분 짓는 일은 더욱더 무의미해질 것”이라며 “‘로마’의 아카데미 주요상 수상은 대세를 순조롭게 반영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흑인 피아니스트와 백인 운전사의 우정을 그린 영화 ‘그린 북’이 올해 아카데미상 작품상을 받았다. CJ아트하우스 제공

작품상은 ‘그린 북’에 돌아갔다. 인종 화해를 그린 작품에 호의적인 아카데미상의 전통을 감안하면 무난한 선택이었다. ‘그린 북’은 흑인 차별이 극심했던 1962년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와 백인 운전기사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의 우정을 그린다. 돈 셜리를 연기한 배우 마허셜라 알리는 남우조연상을 수상했고, 토니 발레롱가의 아들인 닉 발레롱가는 각본상을 받았다.

남우주연상은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록밴드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를 연기한 라미 말렉이 차지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음향상, 음향효과상, 편집상을 포함해 4관왕에 오르며 올해 가장 많은 트로피를 가져갔다.

24일 오후(현지시간) ‘보헤미안 랩소디’로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라미 말렉이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P 뉴시스

여우주연상은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에서 18세기 초 영국 앤 여왕을 빼어난 연기로 그려낸 올리비아 콜먼이 수상했다.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는 ‘로마’와 함께 10개 후보를 배출했지만 여우주연상 하나에 만족해야 했다.

올해 아카데미에선 ‘블랙 필름’의 성과도 두드러졌다. 남우조연상 마하셜라 알리(‘그린 북’)와 함께 레지나 킹(‘이프 빌 스트리트 쿠드 토크’)이 여우조연상을 받으며 조연상을 모두 흑인 배우가 차지했다. 아프리카 문화에 기반한 서사와 흑인 슈퍼히어로를 내세운 ‘블랙 팬서’는 마블 영화 최초로 작품상 후보에 올랐고, 음악상과 미술상, 의상상 등 3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블랙 필름의 거장 스파이크 리 감독은 ‘블랙클랜스맨’으로 각색상을 받았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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