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 일정 ‘미성년자 성 학대 대책회의’ 종료
교황청 ‘가이드북’ 발행 등 미미한 대책만 제시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톨릭 교회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아동 성추행 등 교회 내 성범죄에 대해 “교회는 약한 사람들을 위한 안전한 곳”이어야 한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하지만 구체적 해결 방안은 발표하지 않아 교회 내 성범죄에 대한 우려는 더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24일(현지시간), 나흘 일정으로 바티칸에서 열린 ‘미성년자 성 학대 대책회의’를 끝마치는 강론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 교회가 성범죄에 연루된 것에 대해 “심각하고 도저히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한탄했다. 또 “교회 안에서 단 한 건이라도 이런 범죄가 발생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엄격한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이어 아동 및 소수자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는 “권력 관계”에서 비롯한다며, “소년병과 아동 성매매, 기아 등도 권력관계의 다른 모습이다”고 밝혔다.
교황청은 회의 폐막 직후 바티칸 및 교황청 관할 지역에서 미성년자 및 연약한 성인을 보호하기 위한 교령을 발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전 세계 주교들을 상대로 그들의 의무를 이해할 수 있도록 ‘가이드북’을 발간할 예정이다. 성 학대 사건을 처리하기 위한 전문가들을 전 세계에 파견해 주교들이 성 학대 사건들을 처리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도 전했다.
하지만 교황청이 내놓은 일련의 대책에도 불구, 과거 성범죄를 제대로 처리하기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의가 개막한 지난 21일, 직접 작성한 21항의 미성년자 보호 대책을 내놓은 바 있지만 회의 폐막 시점에는 별다른 결론을 내놓지 않았다. 결국 ‘대책회의’가 공염불로 끝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당연히 교회 내 성범죄 피해자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적 학대 문제는 사회 모든 분야에서 일어난다”고 말한 것에 대해 교회 내 성폭력을 추적해 온 앤 도일은 “교황은 견고한 변화를 말하는 대신 미적지근한 전제를 내밀었다”며 “재앙적인 오판”이라고 비판했다. 교회법 전문가인 니콜라스 카파디 변호사는 “교황은 (교회 안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며 “무관용 정책을 전면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뉴욕타임즈(NYT)가 전했다.
앞서 23일에는 나이지리아 출신 베로니카 오페니보 수녀가 고위 성직자들을 직접 공격했다. 오페니보 수녀는 "교회가 이러한 잔혹 행위에 어떻게 그렇게 오래 침묵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라고 되물으며 "우리는 위선과 현실 안주가 이러한 수치스럽고 가증스러운 일을 초래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황청에서 성범죄 조사를 책임지는 찰스 시클루나 대주교도 교회의 자성과 더 강력한 대응의 필요성을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탈리아 일간 라레푸블리카에 따르면 시클루나 대주교는 “교회는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야 한다.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교회 내 아동 보호를 주장하는 한스 촐러 신부도 “큰 전환이 일어나기까지에는 시간과 에너지가 더 필요하지만 근본적 움직임이 있었다”고 이번 회의를 평가했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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