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계체조 국가대표 여서정(18ㆍ경기체고)은 체조를 시작한 뒤 줄곧 ‘여홍철 딸’로 불려왔다. 1990년대 한국 체조 간판이자 ‘도마의 신’으로 불리는 여홍철(48) 경희대 체육학부 교수의 재능을 이어받았다는 평가 속에 무럭무럭 성장한 여서정은 지난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여자 도마 부문 금메달을 따냈다. 1986년 이후 32년만의 여자 기계체조 금메달이었다.
그 날 이후 여서정은 자신의 이름을 딴 기술 ‘여서정’을 시도하며 2020년 도쿄올림픽을 겨냥하는 국내 간판 체조선수로 우뚝 섰다. 자연스럽게 여홍철은 ‘체조선수 딸을 둔 레전드’가 아닌 ‘차세대 체조 레전드의 아버지’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여)서정아빠’로 불리는 날이 늘었지만, 일찍이 ‘딸 바보’로 소문난 여홍철에겐 그만한 행복도 없었다.
여홍철은 급기야 해외 전지훈련 및 대회 일정으로 바쁜 딸을 대신해 시상식에 불려 다니는 삶을 살게 됐다. 25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코카콜라 체육대상 시상식에 여자 신인상 수상자인 딸을 대신해 모습을 드러낸 그는 “선수시절 오고 싶었던 시싱식에 딸 대신 오니 훨씬 좋다”라며 수줍게 웃었다.
그는 “요즘 딸 활약에 지인들의 축하전화가 밀려온다”고 했다. 여서정은 이틀 전 호주 멜버른 하이센스 아레나에서 열린 국제체조연맹(FIG) 월드컵 대회 여자 기계체조 도마 결선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1년 여 앞으로 다가온 도쿄올림픽 메달 전망을 밝혔다. 체조계에서는 여서정이 현재 연마중인 고난도 기술 ‘여서정’을 완성한다면 올림픽 메달도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뜀틀을 짚고 두 바퀴 몸을 비틀며 공중회전을 하는 고난도 기술인 만큼 난도도 최고 6.0점까지 바라볼 수 있다는 평가다. 약 1년 전 포르투갈에서 열린 월드컵 대회에서 실패하며 정식 기술로 인정받진 못했지만 도쿄올림픽까진 갈고 닦을 시간이 충분하다.
여홍철은 “훈련만 잘 마치고, 다치지 않고 오길 바랐는데 금메달까지 따낸 딸이 대견하다”라면서 “이렇게 빨리 성장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물론 부모로서 내년 올림픽에 대한 기대도 품고 있다. 그는 “딸이 자신의 이름을 딴 ‘여서정’을 거의 연마한 것 같다”라면서도 “올림픽 무대에서 실수하지 않으려면 평상시 100%에 가까운 성공률을 보여야 하는 만큼 끝까지 완성도를 높여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지난 1996년 미국 애틀란타 올림픽 도마 결승에서 뼈아픈 실수로 금메달을 놓친 자신의 길을 되풀이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는 또 “훌륭한 감독과 코치가 있는데 내가 간섭하게 되면 딸에겐 되레 손해일 것”이라면서 “집만큼은 열심히 운동한 딸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며 든든한 울타리 역할만 해주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편 이날 코카콜라 체육대상 최우수선수상은 지난해 아시안게임에서 8년 만에 수영 금메달을 따낸 김서영(25ㆍ경북도청)이 수상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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