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경임시정부 청사 복원사업을 비롯한 독립운동 관련 시설 및 국가유공자 지원 사업은 LG가(家)에 있어 의미가 남다르다. 구인회 LG 창업회장과 부친인 춘강 공이 독립운동에 기여하기 위해 중경임시정부와 상해임시정부 독립자금을 지원했기 때문이다.
구인회 창업회장이 독립자금을 지원한 일화는 태평양전쟁으로 시국이 좋지 않았던 1942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경남 진주에서 ‘구인상회’라는 포목상을 경영하고 있던 구 창업회장에게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그는 당시 유림 사회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혔던 ‘백산 안희제’ 선생이었다.
근 20년 만의 만남이었지만 구 창업회장은 쉽게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백산 선생은 고명한 학자 안효제 교리의 친척동생으로 일찍이 구 창업회장의 조부인 만회 구연호 공과 안효제 교리가 한양에서 같이 지낸 인연으로 친분을 가지고 있었고, 안 교리가 만회 공을 만나러 올 때마다 백산 선생 또한 함께 왔었기 때문에 소년기의 구 창업회장과 수차례 만난 일이 있었다.
백산 선생은 과거 부산에서 ‘백산상회’를 경영하며 상해임시정부를 후원하던 독립운동계의 거물이었다. 1927년 일제의 탄압으로 폐업했지만, 백산상회는 당시 국내 최대의 독립운동 비밀자금 루트로 구 창업회장의 사돈이자 GS그룹의 뿌리인 허만정 옹이 설립 주주로 참여하기도 했다.
신병 치료차 잠시 귀국했던 백산 선생은 만주로 돌아가기 전, 독립군 양성을 위한 거액의 독립운동 자금 마련을 위해 1만원을 부탁하고자 구 창업회장을 찾아온 것이다.
1931년 7월에 자본금 2천원으로 ‘구인상회’를 창업한 구 창업회장에게 1만원은 당시 80kg짜리 쌀 1가마니가 약 20원임을 감안한다면 쌀 500가마니에 해당하는 결코 적지 않은 돈이었을 뿐 아니라 목숨을 내놓는 결심이 있어야 했다. 또한 일제가 알게 된다면, 사업기반은 물론이고 집안까지 풍비박산 날 것을 각오해야 했다.
하지만 구 창업회장은 ‘당할 때 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나라를 되찾고 겨레를 살리자는 구국의 청에 힘을 보태는 것이야 말로 나라를 돕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1만원의 독립운동자금을 희사했다.
이런 큰 결심의 배경에는 구 창업회장의 부친인 춘강 공이 1930년경 의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일정 구여순 선생을 통해 당시 상해임시정부 주석 김구 선생에게 독립운동 자금 일화 5,000원을 지원한 일이 큰 영향을 미쳤다.
LG하우시스는 LG의 독립운동 정신을 이어 받아 2015년부터 현충시설 개보수 사업을 펼치고 있다. 지금까지 충칭 임시정부 청사, 서재필기념관, 매헌윤봉길기념관, 우당이회영기념관, 안중근의사기념관, 만해기념관, 도산안창호기념관 등 총 7곳의 독립운동 관련 시설을 개보수했다.
또한, 2016년부터는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국가유공자 및 국내외참전용사 분들의 희생에 작게나마 보답하기 위해 주거환경 개선 활동도 진행해 오고 있다. 올해까지 독립유공자(후손 포함) 8명과 국내 참전용사 8명, 해외 참전용사 3명 등 총 19명을 선정해 주거환경 개선을 지원했다.
LG하우시스는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올해에도 선조들의 나라사랑 정신이 후대에 잘 계승될 수 있도록 ▦올 상반기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위치한 심산김창숙기념관 개보수 지원을 포함한 독립운동 관련 시설 2곳 시설 개보수 ▦국가유공자 및 국내외참전용사 6명 자택 주거환경 개선 지원 등 사업역량을 활용한 애국사회공헌 활동을 지속해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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