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3일 오후 5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탄 열차가 평양에서 북상해 단둥(丹东)을 넘어 하노이를 목표로 남행했다. 열차를 이동수단으로 결정한 김 위원장은 이동노선에서도 ‘존재감’을 효과적으로 높이고 있다. 예상과 달리 베이징(北京)으로 우회하지 않고 최단 노선을 선택한 김 위원장은 텐진(天津)을 지나 거의 직선으로 남행했다.
북한의 이동수단과 경로를 전망했던 주변국 전문가들 사이에 희비가 엇갈렸을 것이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작년처럼 베이징을 들려 시진핑 주석을 잠시 만나 차라도 한잔 하고 갈 것이라는 중국 지인들의 SNS가 조용해졌다. 1차전 페널티킥(PK) 전망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소를 선택한 필자가 이겼고, 다음 중국 출장에서 몇 끼의 간단한 식사도 확보했다.
1차 PK 전망에 실패한 중국 지인들이 김 위원장의 귀국길 전망을 물어왔다. 전문가들과 여론 등 여러 측면에서 중국 반응을 살펴보면 작년처럼 중국의 조급증이 보인다. 김 위원장의 ‘남행열차’는 시작부터 주변국에 서로 다른 메시지를 전달하며 주변국의 희비(喜悲)를 만들고 있다.
김 위원장과 북한 외교당국의 행보는 사실상 예측이 어렵다. 첫째, 북한의 폐쇄적 특성으로 절대 부족한 정보가 가장 큰 장애물이다. 둘째, 변칙적이고 선전 선동에 능한 사회주의의 전술적 특성도 중요한 이유다. 그러나, 필자는 오랜 기간 전문적으로 축적된 북한 외교 집단의 전술적 노하우를 너무 저평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의 대외전략과 정책은 장기간 고도로 훈련된 전문가 집단의 축적된 결과물이다.
김 위원장의 젊은 나이와 비교적 짧은 통치 경력으로 북한의 외교정책과 전술을 판단하는 것은 오판이다. 우리의 대안은 그들의 장점인 ‘전술적 영역’보다 그들의 약점인 ‘전략적 영역’에 집중하여 우리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다.
60시간이나 걸리는 북한의 열차 선택이 상식적이지 않다는 반응 또한 우리 생각의 한계다. 상식의 한계를 넘어야 한다. 주변국의 전술적 화려함에 휘둘리지 말고, 숨겨진 각국의 아킬레스 건을 찾아야 한다. 화려한 전술을 구사하려면 공유할 수 없는 ‘폐쇄적인 기만’을 도처에 깔아야 하지만, 성과는 투자에 비해 미약하다.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는 전략에 집중하여 주변국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지난해 6월 12일 1차 북미정상회담의 장소로 선택된 싱가포르는 정치적 선전효과와 약 6200억원에 달하는 행운의 ‘로또’를 챙겼다. 2차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베트남은 정치외교와 경제 및 군사ㆍ안보적 측면에서 싱가포르를 넘어서는 ‘대형 로또’에 당첨되었다. 냉전 역사의 상징적 의미로 ‘간택’된 베트남은 향후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발전 동력의 기회를 얻었다.
우선, 베트남이 향후 군사적 협력을 포함한 미국과의 종합적인 관계 개선을 한다면, 이는 중국으로부터의 경제와 안보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전략적 의기투합으로 베트남이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는다면, 베트남은 동남아의 새로운 강자가 된다. 둘째, 한국과의 신남방정책 협력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다. 셋째, 북한에 베트남식 발전모델을 제공할 수 있다면, 베트남은 동북아 경제협력의 일원으로 참여하여 새로운 시장 확보라는 보너스도 얻는다.
2차 북미정상회담 직후 우리의 무대가 시작된다. 싱가포르와 베트남을 넘어서는 ‘초대형 로또’를 우리 스스로 만들고 주도할 수 있는 기회다. 당사국의 한계를 넘어 주도국이 되려면, 주변국 한 두 나라의 ‘몽니’ 전술은 과감하게 무시해야 한다. 남북미 3자 협력으로 다수의 국가들이 참여할 공동의 전략적 목표를 구상하면, 한반도가 동북아의 새로운 강자로 출발할 수 있다. ‘몽니’를 부렸던 주변국도 결국은 참여할 수 밖에 없다.
김상순 동아시아평화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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