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마리 정리법’ 실천해봤더니
집 정리는 어렵다. 시간도 심적 여유도 부족한 직장인에게는 더욱 그렇다. 무엇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정리를 시작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안 쓴다는 이유로 무작정 버리자니 물건 값과 브랜드가 눈에 밟히고, 그대로 두자니 정리 공간이 모자라다. 결국 ‘그냥 살던 대로 살자’라는 나태한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온다. 결국 더러운 바닥만 청소기로 쓱 치우고 말기 십상이다. 알게 모르게 집 관리는 점점 어지러워진다.
곤도 마리에는 집 정리 가이드라인으로 세계적인 유명 인사가 된 인물이다. 수 년 전 정리의 대가로 이름을 알린 그는 지난 1월 세계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업체(OTT) 넷플릭스가 ‘곤도 마리에: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를 공개하며 전 세계적으로 정리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곤도는 집 정리 기준을 쉽게 정해준다. 프로그램 제목처럼 ‘물건을 손에 집었을 때 설레는가’다. 메시지 파급은 엄청났다. 미국 등 서구에서는 ‘곤도 마리에 정리법(곤마리 정리법)’에 대한 수많은 간증이 올라오고 있다. 집이 깔끔해진 것을 넘어 삶까지 변화했다는 고백이다. 국내에서도 점차 ‘곤마리 정리법’ 후기가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속속 올라오고 있다.
감명과 실천은 전혀 다르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를 수 차례 돌려본다고 집이 스스로 깨끗해지진 않는다. 버림에 대한 불안감도 쉽게 지워지진 않는다. 한때 국내에서 매달 1일에는 1개, 10일에는 10개를 버리는 ‘미니멀리즘 게임’이 유행했지만, 금세 시들해진 것이 이를 방증한다. SNS 과시용 아니냐는 회의론도 제기된다. 하지만 곤도 마리에는 시종 웃는 얼굴로 “처음은 어렵지만, 금세 쉬워진다”고 외친다. 정말 그럴까. 주말이었던 23일부터 이틀 간 기자가 직접 ‘곤마리 정리법’을 실천해봤다.
◇설렘이란 무엇인가
기자는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가족들과 산다. 방은 6.6㎡(약 2평) 남짓한 크기에 침대와 책상, 수납장과 옷장이 하나씩 자리해 있다. 바깥 활동이 많은 직업 특성상, 방에서는 주로 잠만 자기 마련이었다. 처음에는 ‘가족에게 동참을 제안할까’ 생각했으나 이내 접었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에 출연한 가족이 집 정리에 투자한 시간은 28~37일.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집을 뒤집어엎자는 말을 쉽게 꺼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기자의 방에만 우선적으로 ‘곤마리 정리법’을 실천해보기로 했다. 만 하루를 꼬박 투자했다.
가장 고민은 설렘이었다. 설레지 않으면 버리라는 격언은 성서 문구와 비슷했다. 듣기는 쉽지만, 막상 실생활에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곤도는 설렘을 “강아지를 품에 안거나 좋아하는 옷을 입었을 때 느끼는 따스하고 기분 좋은 감정”이라며 “손에 쥐었을 때 ‘큥(곤도 마리에는 온몸을 가볍게 떨며 이를 설명했다)’하는 느낌”이라고 정의했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에 출연한 가족들은 일부를 제외하고 모두 이를 금세 이해한 느낌이었다. 반신반의하는 시청자를 위해 곤도는 “정리를 하다 보면 설레는 감정을 잘 느끼게 될 것”이라고 북돋는다. 일단 따라서 해보라는 것이다.
곤도는 집 정리에 앞서 한 가지 의식을 행한다. 무릎을 꿇고 앉아서 집에 감사 인사를 드리는 것이다. 곤도는 이를 “그간 우리 가족을 지켜줘서 고맙다는 인사와, 정리될 집에서 누릴 이상적인 삶을 떠올리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모든 사물에 영혼이 있다고 믿는 일본 고유의 종교 신도(神道)가 떠오르는 대목이었다. 애니미즘이 낯선 서구인은 하나같이 “이런 생각을 미처 한 적이 없다”며 신기해한다. 눈물을 보이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자칫 21세기 오리엔탈리즘으로 읽힐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기자도 결국 무릎을 꿇었다. 솔직히 말하면 특별한 감흥은 없었다.
◇옷 정리, 난관의 연속
첫 단계는 옷 정리였다. 곤도는 의류, 책, 서류, 잡동사니(고모노), 추억의 물건 순으로 정리하라고 말한다. 방법은 단순했다. 집에 있는 모든 옷을 한곳에 쌓아놓은 다음, 하나씩 손으로 잡아 설레는지를 판단한다. 설레지 않으면 모두 버린다. 물론 집에게 인사를 건넸듯 설레지 않은 것에게도 ‘그동안 고마웠다’고 작별인사를 건네야 한다.
생각보다 많은 옷이 수납장과 옷장에서 쏟아져 나왔다. 속옷과 양말을 제외했는데도, 한 시간 만에 약 1m 높이의 알록달록 옷 무덤이 싱글 침대 위에 만들어졌다. 구매 시기조차 까마득한 옷도 여러 벌이었다. 창문을 활짝 열고 작업을 했는데도 이마엔 금세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옷 무더기를 보면서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오늘 정리를 끝내지 못하면 방바닥에서 자야겠구나.” 곤도 특유의 웃는 얼굴이 점차 JTBC 드라마 ‘SKY캐슬’ 속 김주영 쓰앵님의 트레이드마크인 굳은 표정으로 바뀌는 것만 같았다.
결정을 내리기 쉬운 옷부터 시작했다. 출근할 때마다 항상 입는 롱패딩을 손에 움켜쥐었다. 그런데 곤도 특유의 ‘큥’하는 설렘이 없었다. 버려야 하는 것일까. 소심한 기자는 그러지 못했다. 재빨리 잡아든 다른 옷도 상황은 비슷했다. 감성이 가물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져버린 것인가 고민까지 들 정도였다.
다행히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출연자 중에서도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에피소드 ‘어른의 집’에 나오는 맷은 옷을 정리하며 “대부분은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반응이 없다”며 “설레게 하는 옷을 고른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곤도는 “정리를 하다 보면 설렘을 알 수 있는 각성의 순간이 온다”며 “만약 일단 그대로 둔다는 결정을 했더라도, 나중에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고 할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추후 그는 책을 정리하면서 설렘을 깨닫는다. 결국 정리를 하면서 스스로 깨닫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고도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옷 무덤 속을 헤집어댔다.
◇이게 바로 설렘인가
쉽게 생각했다. 최근 1년 사이에 한 번도 입지 않았다면 과감히 버렸다. 태가 살지 않았던 옷도 설레지 않는 옷으로 간주했다. 고민되는 옷이라면 한 번 입어보고 결정했다. 3시간 정도 걸리는 대장정이었지만, 결국 ‘설레는 옷’을 모두 고를 수 있었다. 그 사이 10㎏들이 사과박스 한 상자와 50L들이 봉투 2개에는 ‘설레지 않는 옷’이 가득 쌓였다. 봉투 안에는 고가의 명품 브랜드지만 더 이상 입지 않는 스웨터도 있었다. 멀쩡한 옷을 하루아침에 버리겠다며 내놓으니 어머니가 “미친 것 아니냐”고 한마디 말했다. 하나 개의치 않았다. 남의 눈치를 보지 말라는 것 또한 곤도의 지침이었다.
옷 무덤을 없애니 다음 단계인 책과 서류 정리는 보다 수월했다. 방식은 옷 정리를 할 때와 동일했다. 곤도 방식으로 ‘앞으로 내 삶에 도움이 될 것인가’를 기준으로 책을 정리하니 책상 위에 30권이 넘던 책이 절반 가까이로 줄어들었다. 폐기한 서적 대부분은 종강과 동시에 펼쳐보지도 않았던 전공 서적이었으며, 충동 구매로 사뒀으나 읽지 않은 책도 여럿이었다. 버린 서류는 모두 ‘혹시나 추억하고 싶은 순간이 생길까’하는 마음 한 구석에 쌓아두었던 것들이었다.
잡동사니와 추억의 물건도 동시에 정리가 가능했다. 어지럽게 엉킨 덤불 속에서 보물을 찾듯 정리를 이어나갔다. 존재조차 잊고 있었던 생일선물부터 시작해 학창시절 필기노트, 친구와 주고받았던 편지까지 발견할 수 있었다. ‘추억의 물건’이라는 말 그대로 모두 설레는 물건뿐이었다. 그만큼 정리에 더 오랜 시간이 소모됐다. “물건에 삶이 휘둘려선 안 된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조심스레 짐작할 수 있었다.
◇버리고 나서 보이는 것들
정리는 하루를 넘겨 다음날 오후가 돼서야 마무리됐다. 물론 한 번의 정리만으로 삶이 드라마처럼 바뀌진 않았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가족처럼 오랜 시간 집 정리에 집중한 것도 아닐뿐더러, 설렘이라는 감정도 아직까진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전보다 널찍해진 책상과, 여유가 넘쳐나는 수납장만이 정리가 완료됐다는 사실을 알려줄 뿐이었다.
다만 물건에 대한 애착 정도는 명확해졌다. 멀쩡한데도, 평소 잘 사용하지 않았던 물건들이 방 안에 넘쳐났다. 소유에 대한 욕심이 개인 기호라는 눈을 가려버린 꼴이었다. 무엇보다 내 방에 어떤 물건이 있는지 하나하나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적어도 물건 하나를 찾기 위해서 온 방을 헤집어놓을 일은 당분간 없을 것이라 믿는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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