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찌민 봉기 뒤 정부 청사 전환… 조부도 투숙했던 곳으로 알려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숙소로 프랑스 식민지 시기 당시 통킹(Tonkin) 고등판무관 관저로 쓰이던 베트남 정부 게스트하우스(영빈관)가 급부상하고 있다. 김 위원장의 의전 총괄을 맡고 있는 김창선 국무위 부장 등 의전 실무팀이 묵고 있는 숙소의 본관에 해당하는 건물로, 지난 17일부터 보수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곳이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사흘 앞둔 24일, 이 곳에선 양변기 교체 작업이 이뤄졌다. 현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화장실 수리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은 숙소를 (전반적으로) 보수하고 있다는 뜻”이라며 “화장실 수리 작업이 마무리되고 나면, 숙소 수리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오전엔 영빈관 앞마당에선 숙소 내부의 카펫 교체를 위해 붉은색 새 카펫을 재단하는 작업이 진행됐는데, 이 역시 김 위원장의 투숙 가능성을 높여주는 대목이다.
즈엉 찐 특(77) 전 북한주재 베트남 대사는 “1958, 1964년 김일성 주석의 베트남 방문 당시 하노이에는 호텔이 많지 않았다”며 “김 주석이 영빈관에 묵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조부의 행적을 따라 베트남 방문에 육로를 택한 것처럼, 김 위원장이 숙소 역시 조부가 묵었던 곳을 선택했을 수 있다는 뜻이다.
‘통킹궁(Tonkin Palace)’으로 불리던 영빈관은 1919년 완공돼 프랑스 식민 시대 당시 통킹(베트남 북부) 지역을 관리하던 최고 관리 고등판무관 관저로 쓰였다. 1945년 8월 베트남 군중들이 ‘자유독립 베트남 건설’을 외치며 봉기한 뒤 호찌민 주석이 장악, 정부 청사로도 사용됐다.
이 외에도 경호 등 현실적인 이유도 김 위원장이 이곳에 투숙할 가능성을 높인다. 지난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당시 김 위원장 숙소로 쓰였던 세인트레지스 호텔의 경우, 그가 일반인들과 함께 투숙하면서 숙소를 드나들 때마다 투숙객, 취재진과 한바탕 소동을 피운 바 있다. 비록 다소 낡긴 했어도 단독 건물을 사용하는 게 경호에 유리하다는 학습효과가 작용했을 수 있다. 영빈관은 현재 정부 대변인 브리핑 공간으로 쓰이며 국빈 환영 행사장으로도 쓰인다. 작년 11월 말 리용호 북한 외무상 공식 방문 당시 팜 빈 민 부총리가 리 외부상과 오찬을 이곳에서 가졌다.
이와 함께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멜리아 호텔과 관련해 ‘정상의 숙소로는 격에 맞지 않다’는 지적도 김 위원장의 영빈관 이용 가능성을 점치게 하고 있다. 멜리아 호텔이 5성급이긴 하지만, 다른 호텔들과 달리 지금까지 ‘국가원수급 인사’를 맞은 사례는 한 차례도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이곳에 미국 측 프레스센터가 차려진 것도 김 위원장에게는 부담이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숙소는 일찌감치 JW매리엇 호텔로 낙점됐다. 북한이 개최도시로 당초 선호하던 하노이를 얻어내는 대신 미국에 양보한 최고급 호텔이다. 무엇보다 경호측면에서 최고 점수를 받는다. 지난 22일부터는 이곳에서 미국 대통령 전용차 ‘야수(The beast)’ 2대가 주차된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정상회담장도 영빈관과 인접한 소피텔 메트로폴 호텔로 사실상 굳어진 분위기다. 김창선 국무위 부장이 16일 베트남 입국 이후 거의 매일 점검했다. 특히 최근에는 북한 의전팀이 호텔 내부 숙소가 아닌 회의 시설을 중심으로 집중 점검하는 장면이 목격됐고, 미국 측 실무팀이 이 호텔을 찾는 모습도 포착됐다.
메트로폴 호텔은 1901년 지어진 하노이 최초의 근대식 호텔로, 세계 각국의 정상들과 대문호, 영화배우 등 20세기를 장식한 유명인들이 거쳐간 곳이다. 특히 프랑스의 식민통치, 미국과의 전쟁, 통일 등 지난 20세기 베트남이 거친 영욕의 역사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어 근대사 박물관으로도 불린다. 주베트남 미국대사관 사정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미국은 이번 정상회담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역사적 배경의 장소를 선호한다”고 전했다.
하노이=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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