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 개신교 신자로서 마태복음 2장 16절에 불만이 많았어요. 헤롯왕이 아기 예수를 없애려고 베들레헴과 그 일대에 사는 두 살 아래 사내아이를 다 죽였다는 이야기요. 참혹한 학살이 일어난 그 때 신은 왜 가만히 있었을까, 신은 과연 선한 존재일까, 아니 신이 존재하기는 할까, 이 세상은 왜 이렇게 불합리할까, 의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영화 ‘사바하’는 “신을 원망하는 유신론자”라고 스스로 부르는 장재현(38) 감독이 품은 딜레마에서 출발했다. 자칭 ‘종교 덕후’인 장 감독은 그 즈음 운명처럼 불교를 만났다. 한 번 빠져들면 끝을 봐야 하는 ‘덕후 기질’이 발동했다. “불교의 연기설은 ‘이것이 태어나면 저것이 태어나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이 멸한다’고 말해요. 지렁이가 태어나면 천적인 매가 태어나서 균형을 맞추는 원리죠. 모든 만물은 운명 공동체이니 선악도 없어요. 인간의 욕망과 집착만이 있을 뿐이죠.” 21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마주한 장 감독은 “헤롯왕 이야기의 화두와 불교 세계관을 접목해 ‘사바하’를 떠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사바하’는 사이비 종교 연구자인 박 목사(이정재)가 불교에 뿌리를 둔 신흥 종교 집단 사슴동산을 발견하고 그 실체를 추적하는 이야기다. 사슴동산의 배후에 있는 낯선 청년 나한(박정민)을 뒤쫓다가 박 목사는 인간의 종교적 광기가 빚어낸 충격적 진실에 맞닥뜨린다. 장 감독은 “인간의 마지막 욕망은 육체를 이겨내고 영생에 다다르는 것”이라며 “신의 자리를 탐하다 악신이 돼 버린 인간을 묘사했다”고 말했다.
관찰자이자 화자로 관객의 시선을 인도하는 박 목사는 장 감독을 투영한 캐릭터다. 그가 나지막이 읊조리는 “주여, 어디에 계시나이까”라는 질문에 장 감독의 무력감이 담겼다. 장 감독은 “철학적인 이야기라기보다 인간의 욕망이 초래한 비극을 다룬 미스터리 스릴러로 접근했다”며 “닫힌 결말을 만들었지만 정답은 관객의 몫”이라고 했다.
영화는 개봉 5일째인 24일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제 막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을 선보였을 뿐인데도 장 감독의 영화 세계는 확고하다. 그는 첫 영화 ‘검은 사제들’(2015)에서 오컬트 장르의 상업적 성공을 증명해 냈다. 가톨릭 구마 의식을 다룬 ‘검은 사제들’은 한국형 오컬트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544만 관객을 동원했다.
‘사바하’는 ‘검은 사제들’에서 뻗어 나온 줄기다. 장 감독은 구마 사제 캐릭터를 무속 신앙의 세습무당과 강신무당의 관계에 빗대 설계하면서 무속 신앙에 깊이 빠졌고, 무속 신앙과 교집합이 많은 불교로 자연스럽게 관심을 옮겼다. 종교 탐구는 현실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지금 이 세계가 선악 중에 무엇에 더 가까운지 모르겠어요. 제가 사회에 화두를 던질 만한 내공도 아니고요. 다만 욕망이 지배하는 사회라는 문제의식은 갖고 있어요.”
장 감독의 시선은 결국 인간을 향한다. 본능과 이성, 어느 것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인간의 비과학성을 그는 끈질기게 붙들고 있다. “TV에서 사슴이 갓 낳은 새끼를 핥아 주는 모습을 봤어요. 동물도 감정이 있구나 했는데 사실은 냄새를 없애 천적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본능이었죠. 그런데 그 때 사자가 습격을 하자 어미가 혼자 도망을 가더군요. 어쩌면 그게 합리적 행위 아닌가 싶어요. 인간은 죽을 걸 알면서도 타인을 구하려 철로에 뛰어들고, 나무 막대기에 기도를 하기도 하죠. 그런 비과학성이 인간을 아름답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장 감독 영화엔 ‘다크 월드’라는 수식이 붙는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깃털 같다”고 할 정도로 밝고 쾌활하다. 천성이 밝아서 어두운 세계를 동경하는 것이기도 하다. “책장에 꽂힌 책도 온통 검은색 표지뿐”이라며 장 감독이 “푸하하” 웃었다. “추리소설, 종교 관련 책, 요괴 소설 등을 주로 읽는다”고 했다.
장 감독이 영화 감독을 꿈꾼 건 군 복무 시절이다. 영화 잡지를 읽다 영화에 빠진 그는 군대에서 대입 시험을 다시 준비해 성균관대 영상학과에 들어갔다. 20대 중반 덴마크 비정부기구(NGO)에서 2년간 일했고, 2011년 영화 ‘특수본’ 연출부에서 영화계 첫 발을 디뎠다. 장 감독은 “공허한 해피엔딩보다 감정을 위로하는 새드엔딩을 좋아한다”며 “어떤 영화를 만들더라도 인간에 대한 따뜻함은 놓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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