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째 보수공사 진행 중인 베트남 영빈관 이용 가능성도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숙소는 여전히 베일 속에 있다. 지난해 1차 북미 정상회담 때는 싱가포르 정부가 회담 1주일 전에 양 정상이 묵을 숙소 주변을 특별행사구역으로 지정하고, 해당 호텔 로비 입구에 가림막도 설치하는 등 철저한 사전 경호대책을 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하노이 시내 어느 호텔에서도 그 같은 움직임이 관찰되지 않고 있다. 베일이 쳐지지 않아 베일 속인 상황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숙소는 일찌감치 JW매리엇 호텔로 낙점됐다. 북한이 개최도시로 당초 선호하던 하노이를 얻어내는 대신 미국에 양보한 최고급 호텔이다. 무엇보다 경호 측면에서 최고 점수를 받는다. 지난 22일부터는 이곳에서 미국 대통령 전용차 ‘야수(The beast)’ 2대가 주차된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의 숙소는 현재 멜리아 호텔이 가장 유력하다. 지난해 11월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묵는 등 북측 인사들이 베트남 방문 시 즐겨 투숙하는 호텔이다. 김 위원장의 하노이 도착이 임박하면서 북한 인사들이 발길도 이곳으로 이어지고 있다. 24일 북한 고려항공 소속 화물기들이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으로 공수한 각종 장비와 ‘007 가방’을 든 근접경호 요원들이 이 호텔 정문이 아닌 뒷문을 통해 올라가는 장면이 포착됐다. 특히 이 과정에서 취재진이 휴대폰을 주머니에서 꺼내려 하자 호텔 직원들이 강하게 제지했다. 전날에는 호텔 앞 화단에 대해 금속탐지 작업도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5성급 호텔이긴 하지만 다른 호텔들과 달리 지금까지 ‘국가원수급 인사’를 맞은 사례가 한 차례도 없어, 김 위원장이 실제로 숙박할지 여부는 유동적이다. 이곳에 미국 측 프레스센터가 차려질 예정인 것도 변수다. 그래서 베트남 정부 영빈관이 김 위원장 숙소로 낙점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영빈관은 프랑스 식민 당시 베트남 북부 통킹 지역을 관할하던 총독 관저로 쓰인 건물이다. 1945년 8월 베트남 군중들이 ‘자유독립 베트남 건설’을 외치며 봉기한 뒤 호찌민 주석이 장악, 정부 청사로 사용하던 곳이다. 특히 1주일째 보수공사가 이어지고 있는 것도 이 건물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모종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대목이다.
정상회담장은 영빈관과 인접한 소피텔 메트로폴 호텔로 사실상 굳어진 분위기다. 김 위원장 의전 총괄인 김창선 북한 국무위 부장이 16일 베트남 입국 이후 거의 매일 점검하는 곳이다. 특히 최근에는 북한 의전팀이 호텔 내부 숙소가 아닌 회의 시설을 중심으로 집중 점검하는 장면이 목격됐고, 미국 측 실무팀이 이 호텔을 찾는 모습도 포착됐다. 주베트남 미국대사관 사정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미국은 이번 정상회담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역사적 배경의 장소를 선호한다”고 전했다.
메트로폴 호텔은 1901년 지어진 하노이 최초의 근대식 호텔로, 세계 각국의 정상들과 대문호, 영화배우 등 20세기를 장식한 유명인들이 거쳐간 곳이다. 특히 프랑스의 식민통치, 미국과의 전쟁, 통일 등 지난 20세기 베트남이 거친 영욕의 역사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어 근대사 박물관으로도 불린다.
하노이=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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