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혼비(필명) 작가가 쓴 에세이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2018)는 제목처럼 축구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다. 책 속 여성들은 수시로 투사가 된다. 이런 상황을 만날 때다. “프로 선수 경력까지 있는 20년 차 여자 축구 선수에게도 코칭하려 드는 남자가 있다. 세상에는 전 국가대표 선수를 앞에 놓고 축구의 기본기에 대해 논의하려고 하는 남자들이 정말로 있다.” 축구는 이를테면 현대 남성의 영역 표시다.
□ 매년 봄 열리는 한국기자협회 축구 대회에서 기자들은 축구를 한다. 문장에 빠진 말이 있다. ‘남성.’ 고쳐 말하자면, 매년 봄 열리는 한국기자협회 축구 대회에서 남성 기자들은 축구를 한다. 올해도 한다. 47번째 대회다. “언론의 유대를 돈독하게 하는 친목 활동”(한국기자협회 인터넷 홈페이지)이란다. 왜 축구일까. 47년 전에는 기자의 젠더 기본값이 남성이었다. 기자든 뭐든 힘 좀 있는 직업은 죄다 그랬다. 모여서 축구를 하든, 우유팩 차기를 하든 문제 될 게 없었다. 축구대회 대대로 여성 기자의 임무는 남성 동료를 응원하는 거였다. 입사 초기 나도 목이 쉬어라 응원가를 불렀다.
□ 삼성전자에도 축구 대회가 있었다. 전세계 스마트폰 판매 직원들이 나라 이름을 걸고 출전한 ‘갤럭시컵’. 얼마 전 삼성전자는 축구를 접었다. 행사 이름을 ‘갤럭시스타즈’로 바꾸고 모두의 축제로 만들었다. 기자들도 축구가 문제라는 걸 안다. 남성 기자라고 전부 축구에 열광하는 것도 아니다. 언론사마다 선수 11명을 채우기 어려워진 지가 꽤 됐다. “너 축구 좀 하냐.” 남성 기자가 입사하면 그것부터 묻는다. 원래 하던 거니까,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그래도 그냥 축구를 한다. 적폐가 그런 안이함을 먹고 자란다던가.
□ “그러면 여성도 같이 공을 차면 되지 않느냐”고 한다. 여성과 남성이 신체 능력을 겨루는 건 코뿔소와 하마의 많이 먹기 대결만큼이나 의미 없다. 하고 싶지 않은 축구를 하라고 권하는 건 기회를 주는 게 아니다. “축구가 싫으면 발야구나 피구를 하라”고 한다. 단합과 친목을 왜 공놀이로 해야 하나. 무엇보다, 얼굴도 모르는 기자들이 왜 단합하고 친목해야 하나. 민주주의는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며, 축구할 자유도 당연히 포함된다. 그러나 어떤 축구는 차별이다. 어제의 관성으로 오늘을 살 수 있는 시대는 갔다.
최문선 문화부 순수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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