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내외에 다목적 노림수]
전용열차 타고 23일 평양 떠나… 중국 단둥ㆍ톈진 등 거쳐 남행
61년전 김일성 행보 답습해 정통성 부각하며 정상국가 면모도 과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선택은 열차였다.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김 위원장이 23일 평양에서 열차를 타고 출발했다는 사실을 북한 매체들이 24일 알렸다. 김 위원장이 롤 모델인 조부 김일성 주석의 행보를 답습해 내부적으로 정통성을 확보하면서 대외적으로는 북한 내부 단속 자신감까지 내비쳤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1차 회담 때 빌렸던 중국 항공기보다 전용 열차가 편한 데다, 여행길에 중국과 베트남을 구석구석 살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온다.
전날 오후 4시 25분쯤 평양역에 도착한 김 위원장을 태운 전용 열차는 7분 뒤 플랫폼을 떠났다. 이날 오후 9시 30분쯤 북중 접경 지역인 단둥(丹東)을 통과한 열차는 친황다오(秦皇島), 탕산(唐山), 톈진(天津)역을 거쳐 남쪽을 향한 것으로 전해졌다. 예상과 달리 베이징(北京)은 거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이 톈진에서 우한(武漢), 창샤(長沙)를 거쳐 광저우(廣州)를 지나는 ‘김일성의 길’을 따르기에는 시간이 촉박할 수 있는 만큼 광저우는 귀국 길에 들를 가능성도 제기된다. 창샤에서 베트남 접경지역인 난닝(南寧)으로도 바로 철도가 연결돼 있다.
김 위원장이 열차를 이동 수단으로 결정한 건 대내외적으로 다양한 노림수라는 분석이 나온다. 4,500여㎞ 떨어진 하노이까지 60여시간 동안을 열차로 완주할지,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처럼 광저우 등 중국 내에서 항공편으로 갈아타고 이동할지 아직 확실치 않지만, 일단 평양역에서 열차를 타고 출발한 사실을 공표한 건 상징적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이다. 1958년 김일성 주석은 베트남을 방문할 때 평양-베이징-광저우는 열차로, 광저우-베트남은 중국이 제공한 비행기를 이용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김일성이 갔던 길을 답습해 정통성에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장갑차 수준의 안전성이 보장되고 최첨단 통신 시설과 침실, 집무실, 연회실, 식당, 경호요원 탑승 칸까지 갖춘 사실상 ‘이동식 집무실’의 편의성을 고려해 실리까지 챙겼다는 평가도 있다. 노후 기종인 전용기 ‘참매 1호’로 장거리 비행을 할 때 불거질 수 있는 안전성 우려를 불식하고, 지난해 싱가포르 회담 때 중국 항공기를 이용해 깎였던 자존심 문제를 해결하는 효과도 노렸을 수 있다.
자신감과 개방적 성향을 김 위원장이 내비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이날 탑승에 앞서 김 위원장이 열차를 사열하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최룡해 당 부위원장, 박봉주 내각 총리 등 당ㆍ정ㆍ군 간부들의 환송을 받으면서 열차에 오르는 모습 등이 담긴 사진 4장을 보도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김 위원장이 북한을 비워도 내부적으로 충분히 단속돼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주는 모습”이라며 “외국에서 교육을 받아 개방적인 김 위원장의 성향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동선을 사전에 알렸다는 점에서 북한의 정상국가화가 진일보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해외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에야 북한 내 주민들에게 소식을 알렸던 부친 김정일 국방위원장보다 정상국가 수장으로서의 면모가 더 확연한 건 물론이거니와, 평양 출발 이튿날 싱가포르에 도착한 뒤 출발을 알렸던 지난해 첫 북미 정상회담 때에 비해서도 한발 더 나아간 행보라는 것이다. 이날 조선중앙통신 등이 “김 위원장이 응우옌 푸 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 겸 국가주석의 초청으로 곧 베트남을 공식 친선 방문한다”며 “방문 기간 두 나라 최고지도자들의 상봉과 회담이 진행된다”고 미리 보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앞서 중앙통신 등 북한 매체들은 이날 오전 “김 위원장이 27일부터 28일까지 베트남 하노이에서 진행되는 제2차 조미수뇌상봉과 회담(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전날 오후 평양을 출발했다”고 보도했다. 김영철ㆍ리수용ㆍ김평해ㆍ오수용 당 부위원장, 리용호 외무상, 노광철 인민무력상, 김여정 당 제1부부장, 최선희 외무성 부상 등 수행단 명단도 공개했다. 다만 김 위원장 부인인 리설주 여사는 거명되지 않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와의 ‘퍼스트레이디 외교’가 성사되지 않을 공산이 커졌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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