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희생자ㆍ김대중 전 대통령 등 추모위령제 올려 나라의 큰무당 역할
영화 ‘만신’의 실제 인물인 큰무당 김금화씨가 칼날 위의 긴 삶을 마쳤다.
중요무형문화재 제82-2호로 ‘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굿’ 보유자인 김씨가 23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8세.
고인은 1931년 황해도 연백에서 아들을 간절히 원하던 집의 둘째로 태어났다. 아들이 귀하던 집안이었던 탓에 이름 역시 남자 동생을 본다는 뜻의 ‘넘세’로 불리다 열세 살 무렵에야 비단 금에 꽃 화자를 붙인 ‘금화’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어린 시절부터 다른 사람 귀에는 들리지 않는 목소리와 이야기를 나누고 앞일을 내다보는 등 신기를 보였던 고인은 12세 때 무병(巫炳)을 앓은 뒤 17세 때 큰 만신(여자무당의 높임말)이자 외할머니였던 김천일씨로부터 내림굿을 받고 무당이 됐다.
뛰어난 기량을 인정받아 19세 때 독립한 뒤 1950년 한국전쟁 때 월남해 경기도 이천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다 1965년 서울로 활동 지역을 옮겼다. 1972년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해주장군굿놀이’로 개인 연기상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민속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작두 위에서 춤을 추며 어장의 풍어(風魚)를 기원하는 ‘서해안풍어제’를 주재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서해안 풍어제는 서해안 지역의 어촌에 전승돼 온 제의로, 마을 사람 모두가 참여하는 ‘대동굿’과 선주들이 올리는 ‘배연신굿’으로 나뉜다.
1982년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으로 미국에서 공연을 한 뒤 세계인의 이목을 끈 고인은 이후 스페인, 러시아, 오스트리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과 중국, 일본 등 세계 곳곳에서 공연을 하며 굿을 매개로 우리 전통문화를 알리는 데 앞장섰다.
이후 나라의 중요한 굿을 도맡았고, 1985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배연신굿 및 대동굿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 사도세자, 백남준 작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위한 진혼제와 세월호 희생자 추모위령제를 지내는 듯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부름을 받았다.
2005년에는 인천 강화도에 무속체험장인 ‘금화당’을 열어 후진을 양성하고 굿 문화를 알리는 데 힘썼다. 2014년 박찬경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만신’의 주인공이자 원작자로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김새론, 류현경, 문소리 배우가 각각 고인의 유년과 성인 시절을 연기한 영화는 토론토 릴 아시안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장편영화상을 받았다.
고인은 생전 인터뷰에서 만신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다른 사람의 걱정거리를 대신 짊어져야 하는 고통, 세상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사가 되어야 하는 고통, 인간과 신들 사이를 매개하고 화해를 청하는 책임의 고통을 떠안고 사는 게 만신의 고통”이라고 말한 바 있다. “우리의 뿌리와 맥을 가지고 무속 문화를 세계에 펼친 사람이라고 기억됐으면 좋겠다”고도 덧붙였다.
유족으로는 아들 조황훈씨와 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굿 이수자인 조카 김혜경씨가 있다. 빈소는 인천 동구 청기와 장례식장. 발인은 25일 오전 6시 40분 장지는 인천 부평승화원에 마련된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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