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수가 많아 심심할 겨를이 없는 토론방이 유난히 바빠진다. 카카오 카풀 앱 도입에 반대하는 택시기사 한 분이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인 채 택시를 운전해 국회로 돌진했다. 두 달 새 세 번째 분신이다. 이구동성으로 안타까워하면서도 내놓는 해법은 백가쟁명이다. 진지한 해결책을 내는 데 바빠 썰전의 전장이 아이러니하게도 카카오인 것은 아무도 문제삼지 않는다.
‘공유경제로 가는 도도한 물결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죠./ 문제는 기존 택시들의 생업 보장인데요./ 개인택시는 그대로 운영하게 하고 회사택시는 우버로 대체하면 어떨까요./ 개인택시 싫은 사람은 카카오가 면허를 사들이도록 의무화 하구요./ 택시 하는 분들이 카카오 사업에 주주로 참여하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요./ 카카오 기술에 택시업을 결합한 국민주 형태의 회사를 만들어 해결해 봅시다./ 신기술이라고 한 두 사람에게 나눠주는 것이 첨단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될까요./ 공공성이 짙은 필수재에 대해서는 국가가 좀 더 사려 깊게 관여해야 합니다.’ 다채롭고도 간곡한 의견들이다.
“공유경제는 현실적으로 기존 이해관계자와의 상생을 담은 대타협이 이뤄져야 한다”는 정부 당국자의 발언에 대해 업계 대표는 “국민 편익보다는 공무원들의 편익만 생각한 무책임한 정책 추진방식”이라고 응수한다. 카풀 등 모빌리티 산업은 데이터를 얼마나 가졌는지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갈린다. 해외 업체들이 들어오면 시장을 다 내줄 판이다. 노키아가 망하고 핀란드 경제가 휘청했던 것과 같은 일이 우리나라에선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카풀 도입에 적극적인 업계의 나름 일리 있는 주장들이다.
다른 주장도 있다. 국내 온디맨드 플랫폼은 대부분 공유경제라는 패러다임을 내세우지만, 공유경제는 이윤 창출의 도구가 아닌 한정된 자원을 공유해 합리적 소비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공유경제를 소비의 한 방식으로만 보고 전통산업 생태계와 다투려 하니 생존권을 두고 충돌이 생긴다. 지금이라도 새로운 전략으로 정부와 택시업계를 설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CES 2019에서 우리나라는 61개국 중 24위에 머물러 혁신 챔피언 16개국에서 빠졌다. 자율주행차 등에서 얻은 점수를 라이드셰어링과 단기렌탈에서 까먹었기 때문이다. 올해 예정된 우버와 리프트의 기업공개로 부가가치는 제조업에서 이를 연결시켜주는 플랫폼으로 빠르게 이전될 수 있다. 플랫폼 주권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공존과 충돌 사이의 균형적 시각이 절실하다.
찰스 디킨스가 프랑스 혁명이라는 정치적 격변기를 압축해서 담아낸 대서사시 ‘두 도시 이야기’의 첫 문장이 떠오른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곧 절망의 겨울이었다.’ 파리에서 대혁명이 일어났을 때 다른 도시 런던은 우려와 함께 지지의 모습도 보였다. 영국의 구체제 권력은 혁명이 런던으로 전염되지 않기를 바랐고, 지지하는 쪽은 프랑스처럼 구체제가 무너지는 계기가 만들어지기를 바랐다. 이 소설은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한 가족의 애절한 삶을 조명한다. 주목할 것은 오히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자유, 평등, 박애의 이념 아래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해 낸 프랑스 혁명이라는 그 배경 사건이다. 혁명은 잘못된 시스템에 대한 장례식을 치르고 더 나은 시스템으로 나아갈 때 완성된다. 하지만 해방과 환희는 여전히 일부만의 것이고, 두려움과 긴장은 고스란히 모두의 짐으로 남는 그런 혁명이어서는 곤란하다. 모빌리티는 다리의 연장일 뿐 아니라 세상을 보는 눈이다. 그 눈으로 보는 요즘 세상도 4차 산업혁명이라는 또다른 ‘혁명’의 얼굴을 하고 있다. 휴수동행(携手同行), 손잡고 함께 가야 길이 열린다.
구자갑 롯데오토리스 대표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