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정부 닮아가는 文정부 행태
“우리는 다르다”는 우월감 내재
오만과 집단사고에서 깨어나야
“한국 정치의 90%는 두 가지만 알면 설명할 수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과 ‘싸우면서 닮는다’이다”. 25년 전 필자가 한 언론에 쓴 글이다. 이로부터 25년이 지났지만 불행히도 이 말은 아직도 유효하다. 아니 이제는 틀리다. 90%가 아니라 99%는 설명이 된다. ‘내로남불’이라는 표현이 일상화되었다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한 평론가가 문재인 정부를 박근혜 정부 2기라고 평했지만, 요즘 문재인 정부를 보면 여러 면에서 자신들이 그토록 비판해온 이명박ㆍ박근혜 정부를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다른 점도 많지만, 개 돼지 발언을 연상케 하는 각종 국민 비하 발언으로부터 양승태를 빼어닮은 사법 개입, 토건국가를 떠오르게 하는 지역사업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에 이르기까지 그 예는 끝이 없다. 그 결과 하늘을 찌르던 지지율이 추락하고 있고 심지어 박근혜의 ‘정치적 복권’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다행히 자유한국당의 연이은 자살골 덕분에 지지율이 일시적으로 반등하고 있지만, 이는 문 정부의 자기성찰을 가로 막는다는 점에서 오히려 ‘축복을 가장한 저주’이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보수 정부를 따라하고 있는 이유다. 치매가 걸려, 자신들이 지금 하고 있는 것이 과거 자신들이 열을 올리며 비판했던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의 행태들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렸기 때문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오히려 다행이다. 그러나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오만 때문이다. “똑 같은 것도 보수세력이 하면 심각한 문제지만 민주적 정통성을 가진 우리가 하면 민주주의 발전과 개혁을 위한 필요악이고 불가피한 것”이라는 도덕적 우월감과 오만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독재정권의 도청과 공작정치의 가장 큰 피해자였고, 여러 인권상을 받은 인권의 지도자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 시절에도 도청을 계속하다가 핵심 측근들이 줄줄이 감옥을 갔다. “독재정권이 하는 도청과 공작정치는 반민주적 폭거지만 민주세력인 우리가 하는 것은 민주발전을 위한 필요악”이라는 오만과 도덕적 우월감이 내재해 있었던 것이다.
청와대의 현직 언론인 영입에 대한 문 대통령의 해명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언론시민개혁연대가 이번 영입에 대해 “현직 언론인들이 청와대로 직행하던 과거 정권의 삐뚤어진 언론관과 얼마나 다른가”라고 비판하는 등 비판여론이 들끓자, 문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직접 해명했다. “권언유착 강화의 일원으로 현직 언론인을 데려오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보고 저도 비판”했었지만 “그런 권언유착 관계가 지금 정부는 전혀 없”으며 이번에 영입한 기자들은 “권력에 대해 야합하는 분들이 아니라 공정한 언론인으로서 사명을 다해 온 분들이다. 그런 분들이 청와대에 들어가면 잘 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보수정권의 보수언론기자 영입은 권언유착이지만 민주개혁정부의 ‘개혁언론’ 기자 영입은 권언유착을 걱정 안해도 된다? 오만하고, 그렇기 때문에 더 위험한 발상이다. 아니 현역이 아닌 대한민국의 전직 기자 중에서 이들 만큼 개혁적이고, 능력있는 사람이 없다는 말인가? 왜 굳이 현역을 데려다 쓰는가? 전직 기자 중에 개혁적이고 능력있는 사람은 많을지 몰라도, 믿고 맡길 수 있는 ‘친문’은 이들 뿐이라는 이야기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인사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이제 “우리들은 민주적 정통성을 가지고 있고 촛불에 의해 탄생한 촛불정권이기 때문에 보수정권과 다르다”는 도덕적 우월감과 자기도취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기성찰과 내부비판이 사라진 집단사고에서도 깨어나야 한다. 역사는 도덕적으로 뛰어나고 우수한 인재들이 모인 정권도 집단사고에 빠질 때 얼마나 잘못된 결정을 하고 나라를 비극으로 몰고 갔는가를 무수히 보여주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제 오만함을 버리고 겸허한 자세에서 촛불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촛불은 결코 문재인 정부 혼자 한 것이 아니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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