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기의 100년에서 100년으로] <51> 한용운의 ‘님의 침묵’
이번 주는 역사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금요일인 3월 1일 3ㆍ1운동 100주년을 맞는다. 역사학자 강만길은 3ㆍ1운동이 그 참가 인원과 전국적 규모를 생각할 때 우리 역사에서 ‘거족적인 사회 운동’이었다고 말한다. 조선 민족이 식민 통치를 달게 받는다고 주장한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선전이 허구임을 널리 알리고, 민족 자결과 국가 주권을 당당히 요구했던 ‘근대적ㆍ국민적 민족해방운동’이 바로 3ㆍ1운동이었다.
그렇다면 3ㆍ1운동의 주체는 누구였을까. 3ㆍ1운동을 이끌었던 이들은 민중이었다. 여기에 더하여, ‘민족대표 33인’의 역할이 컸다. 민족대표 33인은 우리 민족의 독립을 선언한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이들을 말한다. 손병희는 33인의 상징적 인물이었고, 기독교계의 이승훈과 천도교계의 최린이 작지 않게 기여했다. 불교계에선 한용운과 백용성이 참여했다.
오늘 살펴보려는 이는 바로 승려이자 독립운동가이고 시인인 한용운이다. 33인 가운데 한용운을 먼저 떠올리는 까닭은 시인으로서의 그의 정체성에 있다. 이 땅에서 살아온 이들이라면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을 배워 왔다. ‘님의 침묵’은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정지용의 ‘향수’, 백석의 ‘흰 바람벽이 있어’, 이육사의 ‘절정’, 그리고 윤동주의 ‘서시’와 함께 일제 강점기에 쓰인 대표적인 시 가운데 하나다.
님이란 ‘사모하는 사람’을 말한다. 누군가를, 그 무엇을 사랑하는 것만큼 소중한 일은 없다. 시 ‘님의 침묵’을 포함한 시집 ‘님의 침묵’은 님의 존재에 대해 질문하며 숙고함으로써 순정하고 고결한 민족과 나라 사랑을 증거한다. 3ㆍ1운동 100년을 맞이하는 현재, 한용운의 삶과 시를 돌아보는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일 것이다.
◇한용운의 삶과 독립운동
한용운은 1879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다. 용운은 법명이고 만해는 법호다. 어려서 한학을 배웠고 동학농민혁명과 의병운동을 지켜보다 설악산 오세암으로 들어갔다. 이후 방랑하다가 설악산 백담사로 들어가 출가함으로써 승려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그는 ‘조선불교유신론’을 발표했고, 불교 잡지 ‘유심’을 간행했다. 그가 목표로 삼은 것은 조선 불교의 일대 개혁과 대중화였다.
실천적 승려로서의 민족의식을 내면화한 한용운은 1919년 3ㆍ1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불교계를 대표해 민족대표 33인에 참여했고, 이로 인해 옥고를 치렀다. 옥중에서 그는 ‘조선 독립의 서’를 썼다. 1920년대에 물산장려운동 지원, 민립대학건립운동 참여, 신간회 활동 등을 통해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이어나갔다. 뿐만 아니라, 불교청년회 회장, 불교 항일운동단체 ‘만당(卍黨)’ 당수를 맡고 잡지 ‘불교’를 속간하면서 불교계 독립운동을 주도했다.
한용운은 평생 비타협적 독립운동을 고수했다. 총독부와 마주보기 싫어서 성북동에 거처 심우장을 북향 집으로 지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화다. 3ㆍ1운동을 함께 했지만 친일파로 전향했던 최린과 절교하는 등 독립운동가로서의 지조를 지켰다. 일제의 식민 지배가 더욱 강화되자 창씨개명 반대운동, 조선인 학병출정 반대운동을 벌였던 그는 1944년 심우장에서 입적했다.
“각 민족의 독립 자결은 자존성의 본능이요, 세계의 대세이며, 하늘이 찬동하는 바로서 전 인류의 앞날에 올 행복의 근원이다. 누가 이를 억제하고 누가 이를 막을 것인가.” ’조선 독립의 서’의 한 구절이다. 이처럼 ‘조선 독립의 서’가 보여주듯 한용운은 당당한 독립운동가였고, ‘불교유신론’에서 볼 수 있듯 탁월한 승려였다. 불교의 가르침이 존재의 무상함에 있다 하더라도 광복을 눈앞에 둔 채 이승과 작별한 그의 최후는 여전히 안타깝다.
◇가없는 민족과 나라 사랑
한용운의 또 하나의 소명은 작가였다.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발표했고, 1935년 장편소설 ‘흑풍’을 조선일보에 연재했다. 시집 ‘님의 침묵’은 88편의 시로 이뤄져 있다. 맨 앞에 서문격인 ‘군말’을, 맨 뒤에 발문격인 ‘독자에게’를 덧붙이고 있다. ‘님의 침묵’, ‘알 수 없어요’, ‘복종’ 등은 중·고교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어 매우 익숙한 작품들이다.
시집 ‘님의 침묵’이 높이 평가 받아온 까닭은 님의 존재에 대한 한용운의 질문과 응답에 있다. ‘군말’에서 그는 말한다.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느니라. (...)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羊)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
그리운 건 모두 님이고, 님과 나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그런데 한용운은 님이 ‘너의 그림자’라고 말한다. 님은 사랑하는 대상인 동시에 또 다른 나 자신이다. 사랑의 대상이 자기 자신으로 귀환하는 것은 님이 소망의 객체인 동시에 반성의 주체임을 함의한다.
한용운이 말하는 님은 이 세계에 존재하는 삼라만상 모두일 수 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사적 조건을 고려할 때, 님이 갖는 우선적 의미는 민족 또는 나라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목할 것은 그 님이 객체이자 주체라는 점이다. 불교적 어법으로 말하면 ‘하나가 둘이 되고 그 둘이 다시 하나가 되는’, 사회학적 어법으로 말하면 ‘님은 민족인 동시에 자아’라는 동일성의 깨달음을 그는 전달하는 것으로 보인다.
“님은 갔습니다. (...)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 그러나 (...)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이부었습니다. /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시 ‘님의 침묵’이다. 당시 우리 민족이 갖고 있던 슬픔과 희망을 노래한 한용운의 대표작이다. 민족이 나라를 상실해 더없이 슬프지만 그 슬픔은 독립이라는 역설적 희망을 품게 한다. 역설적 희망이란 지금 비록 떠났으되 다시 만날 것을 굳게 믿는 회자정리(會者定離)와 거자필반(去者必返)의 사상이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지만 결국 되찾고 말 것이라는 강인한 의지를 그는 이렇게 표현한다.
“나는 나의 시를 독자의 자손에게까지 읽히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 그때에는 나의 시를 읽는 것이 늦은 봄의 꽃수풀에 앉아서 마른 국화를 비벼서 코에 대는 것과 같을는지 모르겠습니다. (...) 새벽종을 기다리며 붓을 던집니다.”
시집 ‘님의 침묵’을 마감하는 ‘독자에게’다. 이 구절은 나라의 상실을 탄식하고 그 독립을 열망하는 한용운 자신의 시들이 독립을 성취한 다음에는 읽힐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용운이 세상을 떠난 직후 광복이 이뤄졌고, 우리는 그가 남긴 시에서 늦은 봄날에 가을날 국화 향기를 맡아왔던 셈이다. 마른 국화가 뿜어대는 짙은 향기와 같은 한용운의 가없는 민족과 나라 사랑에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100년에서 100년으로
이 기획의 이름은 ‘100년에서 100년으로’다. 100년의 출발점은 1919년 3ㆍ1운동이다. 앞서 말했듯 3ㆍ1운동은 근대적ㆍ국민적 민족해방운동이었다. 근대적ㆍ국민적 민족해방에 대한 간절한 염원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나타났다.
3ㆍ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신은 ‘대한민국 임시헌장’에 반영돼 있다.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고, 제3조는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없고 일체 평등함’이다. 그리고 제4조는 ‘대한민국의 인민은 신교(信敎), 언론, 저작, 출판, 결사, 집회, 신서(信書), 주소 이전, 신체 및 소유의 자유를 향유함’이다. 요컨대,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는 민주공화국이 바로 3ㆍ1운동과 임시정부의 시대정신이었다.
지난 100년을 돌아보고 새로운 100년을 열어야 할 현재, 이 미래 100년의 출발점은 ‘자유와 평등의 민주공화국’일 것이다. 한용운이 그토록 열망하던 독립을 이룬 후 우리 사회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통해 자유와 평등의 민주공화국을 성취하기 위해 달려 왔다. 이 자유와 평등에 ‘평화와 번영’을 더하는 것은 미래 100년에 요구되는 시대사적 과제일 것이다. 이 과제를 숙고하고 성찰하는 3ㆍ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길 소망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 ‘김호기의 100년에서 100년으로’는 지난 한 세기 우리나라 대표 지성과 사상을 통해 한국사회의 미래를 생각하는 연재입니다. 다음주에는 김영삼의 ‘김영삼 대통령 회고록’이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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