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통신 “金, 23일 평양역서 출발”… 김여정 등 동행, 리설주는 호명 없어
‘이동식 집무실’ 같은 편리함과 중국ㆍ베트남 지방 직접 볼 기회 노린 듯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선택은 열차였다. 27~28일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베트남 하노이까지 장장 60시간 넘는 행군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첫 회담 때 빌렸던 중국 항공기보다 전용 열차가 편한 데다 여행길에 중국과 베트남을 구석구석 살필 수 있고 철도로 대륙을 이어 보겠다는 중국 구상 실현에 일조할 가능성을 타진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24일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하노이에서 열리는 북미 정상회담 참석 차 전날 오후 평양역에서 전용 열차 편으로 출발했다고 밝혔다. 이번 방문에는 김영철ㆍ리수용ㆍ김평해ㆍ오수용 노동당 부위원장과 리용호 외무상, 노광철 인민무력상, 김여정 당 제1부부장, 최선희 외무성 부상 등이 동행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 부인 리설주 여사는 호명되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와의 ‘퍼스트레이디 외교’는 이뤄지지 않을 전망이다.
중앙통신은 더불어 김 위원장이 “응우옌 푸 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 겸 국가주석의 초청으로 곧 베트남을 공식 친선방문한다”며 “방문 기간 두 나라 최고지도자들의 상봉과 회담이 진행된다”고 전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방문 기간은 언급하지 않았다.
평양역에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최룡해 당 부위원장, 박봉주 내각 총리 등 당과 정부, 군 간부들이 나와 김 위원장을 환송했다.
김 위원장의 하노이행(行) 사실은 북한 주민들에게도 공개됐다. 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1면에 김 위원장이 평양역에서 의장대 사열을 받는 모습과 열차에 오르기 전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모습 등을 담은 사진 4장과 함께 김 위원장의 베트남행 소식을 보도했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회담 당시보다는 출발 보도 분량이 줄었다. 중앙통신은 회담 전날인 지난해 6월 11일 김 위원장의 행보를 △평양에서 출발 △싱가포르 도착 △리셴룽(李顯龍) 싱가포르 총리 접견 등 세 꼭지로 나눠 보도했고, 노동신문은 1면부터 두 개 면을 할애해 16장의 사진과 함께 이 소식을 전했다.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처럼 베이징(北京)이나 광저우(廣州) 등 중국 지역에서 항공 편으로 환승할 가능성도 아직 남아 있지만 정황으로 미뤄 김 위원장은 26일 중국과 인접한 베트남 랑선성 동당역에 도착해 승용차로 갈아타고 하노이로 이동할 거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열차로 완주할 경우 김 위원장은 회담 전에 평양에서 하노이까지 약 4,500㎞라는 먼 길을 60시간 이상 달리는 강행군을 감수하는 셈이 된다. 이는 지난해 1차 회담 때 자존심 손상이라는 손해에 아랑곳없이 중국 항공기를 빌려 싱가포르에 가는 실용주의를 보여줬던 일과 대조적이다.
김 위원장의 열차 이용은 일단 완벽한 업무 환경을 갖춰 이동식 집무실이나 다름없는 전용 열차의 편의성을 고려한 선택이라는 게 외교가의 일반적 분석이다. 김 위원장 전용 열차는 장갑차를 능가할 정도로 안전성이 완벽한 데다 최첨단 통신 시설과 침실, 집무실, 연회실, 회의실, 식당, 경호요원 탑승 칸까지 사실상 모든 편의 시설을 갖춘 집무실이다. 때문에 베트남으로 가는 사흘 내내 열차에서 회담 관련 업무를 아무 불편 없이 이어갈 수 있다.
아울러 베이징ㆍ하노이 같은 중국ㆍ베트남의 수도와 발전된 도시뿐 아니라 농촌이나 지방의 변화를 직접 보고 싶은 속내도 작용했을 듯하다. 경제 번영 성취 의지가 강한 김 위원장인 만큼 중국의 지방 도시와 미국과의 관계 개선 뒤 고속 성장 중인 베트남 도시들의 모습이 궁금했을 수 있다. 부친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2년 극동 지역 방문 당시 아무르강변 청소년 캠프에서 “열차여행을 하면 그 나라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한 적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일대일로(一帶一路:ㆍ육해상 실크로드) 구상과 김 위원장의 열차 행군이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도 나온다. 철도가 가장 붐비는 시기인 중국의 춘제(春節ㆍ중국의 설) 시기에 중국인들의 불편ㆍ불만을 감수해가며 주민 통제가 불가피한 김 위원장의 열차 횡단을 중국이 용인한 배경에 철도를 통한 대륙 연결에 대한 북중의 의기투합이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남북 간에 경의선ㆍ동해선 철도 도로 연결 및 현대화 논의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이 사업의 필요성을 부각하려는 의도가 담겼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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