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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청춘이 주고 받은 10년의 편지 “서로를 지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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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청춘이 주고 받은 10년의 편지 “서로를 지켰죠”

입력
2019.02.2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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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시인-20대 청춘 편지로 인생 문답

“어떤 깨달음도 용기 없으면 안돼” 등 조언에

서울살이 청춘은 삶의 힘겨운 변곡점 넘어

주고 받은 편지 묶어 책으로 펴내

부산 중구 동광동 허름한 뒷골목에 자리 잡은 지역서점 ‘백년서원서’. 백년서원서 홈페이지 캡처
부산 중구 동광동 허름한 뒷골목에 자리 잡은 지역서점 ‘백년서원서’. 백년서원서 홈페이지 캡처

“선생님, 좋은 어른이 된다는 건 뭘까요.”

“자기의 생각과 영혼을 뺏기지 않는 삶을 살면 되지 않을까요. 알면서도 흔쾌히 속아주는 관대함과 용기도 필요해요. 고개 숙이는 용기, 손해 보는 용기, 가난을 선택하는 용기… 어떤 깨달음도 용기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게 돼버리니까요.”

50대 시인과 20대 청춘의 삶을 둘러싼 문답은 꼬박 10년 간 편지로 이어졌다. 이는 책이 되었다. ‘나를 지켜준 편지’는 2009년 가을부터 2018년 가을까지 서울과 부산에서 두 여성이 주고 받은 편지를 묶은 책이다.

‘선생님’으로 불리는 이는 부산 구도심 동광동 뒷골목에 위치한 지역서점 백년어서원의 주인, 1959년생 김수우 시인이다. 고민 상담에 나선 사람은 1985년생 김민정씨. 부산 출신으로 어렸을 때부터 장래희망이 법관이었지만, 법대 졸업 1년을 앞두고 자신과 적성이 맞지 않다는 걸 깨닫고 새로운 꿈을 찾아 무작정 상경, 10년째 서울살이 중이다. 두 사람은 백년어서원에서 처음 만났다. 편지는 서점에서 내는 계간지 ‘백년어’에 창간호부터 실렸다.

나를 지켜준 편지

김수우 김민정 지음

열매하나 발행•232쪽•1만3,000원

김씨의 편지엔 누구나 한번쯤 겪었을 법한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방송국 작가 교육생을 거쳐, 마케터로 일하기까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헤매기도 하고, 터무니 없는 ‘0’의 개수가 찍힌 집값에 좌절하기도 한다. 취업과 이직, 결혼과 퇴사, 독립출판 도전 등 삶의 변곡점마다 그는 편지를 썼다.

어려운 순간마다 “선생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좋은 여자 어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생의 버팀목이었다. 김씨는 “삶의 장과 막을 넘기는 일을 치를 때마다 선생님께 편지를 쓰며 부끄럽지 않은 지 생각했다. 내겐 가장 중요한 삶의 방향성을 찾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김 시인은 삶에서 배운 지혜를 아낌 없이 들려준다. 당장의 해결책을 건네지는 못하지만, 한마디 한 마디에서 전해지는 위로와 교훈이 깊은 울림을 남긴다.

“장소는 꿈을 닮아갑니다. 큰 꿈을 품으면 그만한 장소가 선물처럼 준비돼 있을 겁니다. 모든 공간은 시간의 다른 이름이니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욕망이 아닌 꿈을 담은 집),

“우리는 늘 타자에 대해 수시로 가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중략) 어떤 하소연도, 어떤 위로도 말로 다 전할 수 없습니다. 그냥 말 없이 손을 잡아주거나, 차를 한잔 건네거나, 시를 한 편 전하는 건 어떨까요.”(말의 한계, 손의 가능성)

두 사람은 10년의 편지가 서로를 더 단단하게 성장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뻔한 얘기만 늘어놓는 자기계발서 수권을 읽는 것보다, 소중한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며 우리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편지야말로 훨씬 효과적인 자기성찰서가 돼 주지 않을까 싶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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