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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부정한 돈과 부패한 자선

입력
2019.02.25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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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미국인의 평균수명은 3년째 감소 중이다. 백인 중년인구 사망률이 어린이ㆍ노인 사망률을 상쇄할 정도로 높은 탓이다. 미국에서 백인 중년인구가 많이 죽는 이유는 무엇일까.

프린스턴대 경제학자 앤 케이스와 앵거스 디턴은 주요인으로 마약성 진통제 오피오이드 중독 확산을 지적했다. 미국 질병관리센터(CDC)에 따르면, 1999~2017년 21만8,000여명이 오피오이드 과다복용으로 사망했다. 이 기간 오피오이드 관련 사망자 수는 다섯 배나 뛰었다.

오피오이드 남용의 주원인이 되는 약물은 옥시콘틴이다. 제조사 퍼듀제약은 옥시콘틴 판매로 310억 달러 이상 벌었다. 오피오이드 계열 진통제로 옥시콘틴이 많이 처방되는 이유는 이점이 커서가 아니다. 세밀히 진행된 몇몇 시험에서 옥시콘틴은 이점이 하나도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 약물의 성공비결은 퍼듀제약의 적극적인 마케팅전략에 있다.

퍼듀제약은 아서 새클러와 그의 형제들, 그리고 그 후손들에게 엄청난 부를 가져다 준 비공개 기업이다. 아서는 옥시콘틴 출시 8년 전인 1987년 사망했다. 하지만 그는 영업사원들에게 플로리다, 캘리포니아 같은 매력적인 장소에서 학회를 열고 경비를 전액 지원하는 조건으로 의사들을 초청하는 등 성공적인 옥시콘틴 판매 기반을 마련해주었다. 퍼듀제약은 의사들과 유료강연 계약도 맺었다. 영업사원들은 자신이 영업한 의사가 처방한 제품 수량에 따라 보너스를 받았고, 실적이 좋으면 20만 달러 이상 받기도 했다.

오피오이드 확산을 촉진하는 퍼듀제약의 행보는 연방 당국의 주의를 끌었다. 2007년 회사와 3명의 임원은 옥시콘틴의 잘못된 표시와 관련된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고 벌금 6억3,400만 달러를 내기로 했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새클러 가문은 비판을 피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은 지난달 바뀌었다. 매사추세츠주가 아서 새클러의 조카인 리차드 새클러를 포함한 16명의 임원과 그 가족에 대해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뉴욕시와 다른 지방정부도 퍼듀제약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 새클러가 사람들을 추가했다. 매사추세츠주는 소송에서, 새클러가 사람들이 약물의 위험성과 중독성을 알게 된 이후에도 약물 판매를 계속 확장해왔다고 지적한다.

새클러 가는 그들 재산의 일부를 예술을 장려하는 데 썼다. 그들의 이름은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과 구겐하임미술관, 워싱턴 스미소니언박물관, 파리 루브르박물관, 런던 왕립미술관과 테이트국립미술관 등에 새겨져 있다. 터프츠, 옥스포드, 캠브리지, 콜롬비아, 텔아비브 등의 대학에도 새클러의 이름을 내건 연구소, 도서관, 센터가 있다. 내가 가르치는 프린스턴대에는 새클러의 이름을 딴 강의도 있다.

새클러 가의 명예실추는 많은 존경 받는 단체에게 윤리 문제를 제기한다. 수십 년 전 갤러리 건물 등을 짓는 데 쓰인 돈을 회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도 이제는 많은 단체들이 담배회사의 돈을 받지 않으며, 담배회사 소유주의 이름을 건물에 새기지도 않는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과 하버드대의 새클러박물관에 작품을 전시해온 사진작가 낸 골딘은 오피오이드 중독에서 회복하는 중이다. 그는 단체에 사용된 새클러 가족의 이름을 ‘저주’라고 말하며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새클러관에서 시위를 조직해왔다. 아서 새클러의 딸이 운영하는 웹사이트에 작품이 전시된 작가 모린 켈러는 뉴요커에 게재된 ‘고통의 제국을 건설한 가문’이라는 글을 읽고 웹사이트에서 자기 작품을 내려줄 것을 요청했다.

1년 전 뉴욕타임즈는 퍼듀제약이 옥시콘틴을 출시했을 당시 회사를 경영하던 모티머와 레이몬드 새클러가 임원으로 있던 재단에게서 상당한 돈을 받은 21개 문화단체를 조사했다. 그 중 어떤 단체도 기부금을 반환하거나 앞으로 기부금을 받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새클러의 옥시콘틴 홍보에 대한 공개적인 증거들은 1년 전보다 더 큰 저주로 다가오고 있다. 오직 이익만 추구해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많은 고통을 준 사람들의 이름을 보란 듯이 내걸고 싶은 단체가 정말 있을까?

아서 새클러의 이름을 대작 ‘덴두르신전’을 전시 중인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새클러관에 남겨둘 수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있긴 하다. 제약회사가 의사에게 자사 제품을 처방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여러 가지를 할 수 있겠지만, 퍼듀제약의 마케팅 기법은 윤리적 선을 넘는 것이었다. 또한 마약성 진통제 처방이 옥시콘틴 같은 중독성 강한 약과 결합돼 엄청난 피해를 일으켰다.

수많은 중독자를 양성한 약을 팔아 부를 쌓은 새클러 가족의 기부금을 비영리단체가 받아야 할지 여부는, 이들 단체가 저들의 이름을 쓰는 문제와는 별개다. 저들은 피해자에게, 그리고 유족에게 사과해야 한다. 예술을 장려하는 일 대신, 자기 재산을 쌓기 위해 초래한 고통의 무게만큼 약으로 인한 고통을 줄이는 데 수십억 달러를 사용하겠다고 맹세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세계 어느 곳에서든 고통을 가장 효과적으로 줄이는 비영리단체에 기부해야 한다. 그런 목적이라면 기부 받는 사람도 새클러의 돈을 정당하게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피터 싱어 미국 프린스턴대 생명윤리학 교수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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