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서울 은평구 진관사 내 칠성각에서 한지에 쌓인 보퉁이가 발견됐다. 귀퉁이가 불에 그을리고 군데군데 얼룩졌지만 태극과 4괘가 일장기 위에 덧그려진 태극기가 들어 있었다. 1919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태극기였다. 독립운동가 승려 백초월(1878~1944)이 일제 감시를 피해 태극기를 감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을미사변에 분노해 일본군 장교를 처단한 후 인천교도소에 투옥된 백범 김구(1876~1949)는 1898년 2월 탈옥해 충남 공주시 마곡사로 숨어 들었다. 김구는 원종스님이라는 법명으로 출가해 신분을 숨겼다. 8개월간 절에 머물며 심신을 회복한 뒤 중국 상하이로 옮겨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일제강점기 한국 불교는 항일독립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만해 한용운(1879~1944)을 비롯해 수많은 승려들이 독립 운동에 뛰어들었고, 호국 사찰은 일제에 쫓긴 독립운동가들의 은신처가 됐다. 독립 운동의 역사가 깃든 사찰들이 3ㆍ1절 100주년을 기념하는 템플스테이 행사를 준비했다. 순국 선열들을 다시 한 번 기억하고 제 삶을 돌아 보자는 취지다.
초월이 독립 운동의 근거지로 삼은 진관사는 ‘독립의 거점, 진관사에 서다’라는 주제로 3~6월까지 매주 화∙수∙목요일에1일 템플스테이를 연다. 초월의 유물을 전시 중인 인근 은평 한옥박물관 전시를 돌아 보고, 진관사 앞 ‘백초월길’을 걸으며 초월의 정신을 되새기는 일정 등이 마련돼 있다.
마곡사도 3월 1일부터 3일까지 ‘백범 김구 명상 트래킹 템플스테이’를 1박2일 일정으로 진행한다. 김구가 머물렀던 백범당, 그가 머리를 삭발한 곳에 세운 삭발 바위, 그가 명상하곤 했던 백련암으로 연결되는 ‘백범 명상길’을 걸으며 그의 발자취를 쫓는다. 백범이 해방 이후인 1946년 직접 심은 향나무도 경내에 남아 있다고 한다.
3ㆍ1운동 당시 만세 시위를 주도한 강원 평창군 오대산 내 월정사에서도 3월 1일부터 사흘간 템플스테이를 할 수 있다. 3보 1배, 전나무 숲 명상 등을 체험할 수 있다. 월정사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지원 비밀조직인 ‘독립대동단’에서 활동한 지암(1884~1969) 스님이 머문 사찰이다. 경북 역덕군 장육사는 1919년 3월 18일 영덕군 영해면 일대에서 일어난 최대 규모의 만세시위를 기리는 의미로 3월 16, 17일 ‘영해 3ㆍ18 독립만세운동과 함께하는 템플스테이’를 연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장 원경 스님은 “한국 불교는 호국 불교의 역사로서 독립 운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며 “3ㆍ1절 100주년을 맞아 독립투쟁의 생생한 현장이 남아있는 사찰에서 미래를 성찰해보기를 권한다”고 말했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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