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곰을 꼽으라면 단연 반달가슴곰 ‘KM53’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지리산에서 세 번이나 탈출해 수도산으로 이동해 ‘콜럼버스 곰’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KM53은 교통사고를 당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수도산 방사라는 ‘거주이전의 자유’를 얻었다. 반달곰을 국립공원 밖으로 방사한 첫 사례다. KM은 ‘Korea Male(한국산 수컷 곰)’의 약자, 53은 곰의 관리번호다. ‘오삼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는 KM53은 현재 가야산에서 동면 중이다.
반면 지난해 11월 지리산에서 회수된 반달곰 ‘RM62(러시아산 수컷)’는 전남 구례군에 있는 국립공원공단 종복원기술원 학습장 내 철창에 갇혀 있다. 2017년 1, 2월생으로 추정되는 새끼 반달곰은 등산객들이 주는 음료와 간식에 길들여졌다. 두 번이나 회수해 사람을 기피하는 훈련을 받았지만 등산객이 건넨 페트병에 든 오미자 음료를 병째 들고 마시는 영상을 제보 받은 기술원은 결국 더 이상 방사가 어렵다고 판단해 RM62를 회수했다. RM62는 2~3년이 지나 어른 곰이 되면 증식용 개체로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
현재 지리산국립공원에 살고 있는 반달곰은 총 62마리다. 환경부는 2004년 첫 방사를 시작하면서 2020년까지 개체군을 50마리까지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지난해 이미 그 목표를 달성했다. 하지만 이 목표 달성을 위해 얼마나 많은 곰이 도입됐고, 또 회수됐을까.
환경부가 22일 이정미 정의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반달곰 복원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04년 이후 지금까지 러시아, 북한, 중국을 비롯해 서울대공원, 청주동물원에서 도입한 개체는 46마리다. 하지만 2004년에 앞서 2002년 시험 방사한 4마리를 포함하면 총 50마리에 달한다. 이 가운데 자연에 적응한 개체는 16마리에 불과하다. 62마리까지 늘어난 건 지리산에서 40마리가 태어났고, 기술원이 도입한 개체 중 증식을 통해 얻은 6마리가 더해진 수치다. 실제 도입된 곰 가운데 자연에 정착한 성공률은 32%에 불과하다. 지리산에 정착한 곰들과 달리 나머지 34마리의 곰에게 주어진 운명은 그리 달갑지 않다.
먼저 현재 방사에 실패해 회수, 학습장 철창 신세를 지고 있는 곰들은 15마리다. 이들은 우선 평소에는 학습장에 전시되고, 증식용 개체로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 어미곰이 양육을 포기해 회수된 2014년생 ‘KF50’과 2015년생 ‘RF21’을 제외하고는 모두 ‘야성부족’이 원인이다. 하지만 이 야성부족이 곰에게 문제가 있다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다. 지난달까지 종복원기술원 남부센터장을 역임했던 문광선 복원기획부 부장은 “탐방로에 나타난 경우도 있지만 마을에 출몰해 꿀통을 털어먹는 등 대물피해를 일으켜, 마을주민들과의 충돌을 우려해 회수한 경우가 더 많다”고 말했다. 반달곰의 지능이 7세 안팎 어린이와 맞먹다 보니 음식을 쉽게 얻을 수 있는 방법을 한번 터득하면 쉽게 그 유혹을 떨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김석범 국립공원공단 생태복원부 차장은 “전기울타리, 곰퇴치용 스프레이, 나무 막대 위협 등을 통해 사람을 회피하는 훈련을 혹독하게 시킨다”며 “하지만 음식을 쉽게 구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게 되면 사람을 기피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사람의 안전문제로 회수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방사했다가 올무에 걸리거나 농약 등 사고로 숨진 곰은 8마리. 이 가운데 ‘NF08’과 ‘KM55’는 ‘KM53’처럼 지리산을 벗어났다가 올무에 걸려 폐사한 경우다. 이외에 7마리는 적응장에서 울타리를 넘어가다 다른 개체와 충돌하거나 교배 시 상대방에 의한 공격을 받아 폐사했다. 앞서 2002년 시험 방사됐던 4마리 중 2마리는 아예 방사의 기회도 없이 학습장에서 평생을 보내고 있고, 나머지 2마리는 경남 하동 의성 베어빌리지에서 전시되며 먹이체험에 동원되고 있는 상황이다.
정인철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사무국장은 “베어빌리지를 방문했을 당시 지리산에 방사한 곰과 같은 곰인데 철창에 갇혀 먹이체험에 동원되는 게 안쓰러웠다”며 “복원에 성공하지 못하고 회수된 곰들에 대한 관리도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환경부는 서식지 안정화 등이 수반되지 않은 채 그동안 개체 수를 늘리는 복원에만 치중해왔다”며 “그러다 보니 올무 등으로 희생된 개체도 많았고, 개체 문제가 아닌 사람에 대한 안전문제로 안타깝게 회수된 사례도 많았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이어 이제라도 지방자치단체ㆍ시민사회ㆍ주민들이 참여하는 반달가슴곰 공존협의체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은경 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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