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공격에 의사 사망 후
“섬에 보내라” 등 혐오댓글 확산
충격 받은 환자들 치료만 어려워져
“‘정신병자는 모두 섬에 보내야 한다’, ‘명단을 만들어야 한다’라는 댓글을 읽었어요. 정신질환자의 범죄를 다룬 포털 기사였죠. 사실 사람들은 정신질환의 특성을 잘 모르잖아요. 범행 이유가 병 때문인지도 확실하지 않지만, 환자 전체를 욕하는 댓글들이 달려요. 무엇보다 의사 선생님이 나를 두려워하지 않을까 걱정이 돼요.”
7년째 조울증 치료를 받고 있는 김석환(가명·31)씨는 지난 연말 진료 중 조울증 환자의 흉기에 찔려 사망한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사건 이후 인터넷에 접속하기가 겁난다. 고인의 유족까지 나서서 “차별 없이 치료 받는 환경을 만들어달라”고 호소했지만, 온라인에선 정신질환자를 비하하거나 혐오감을 표출하는 자극적 댓글이 주목을 받으면서 오히려 편견이 확산되는 모양새다. 이달 20일까지 주요 포털에 게재된 정신질환자의 범죄 관련 기사를 검색해본 결과 실제 혐오표현이 판치고 있었다. “정신병자는 섬에 보내라”는 점잖은 수준이고 ‘강제수용소’나 심지어 ‘결혼 자격 제한’까지 언급된 경우가 있다. 한 환자 가족은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 환자에겐 비수가 된다”고 하소연했다.
문제는 악성 댓글이 환자의 치료를 방해한다는 점이다. 악성 댓글을 접하면서 ‘사회적 낙인’강화됐다고 여기는 환자들은 치료를 피하게 된다. 병력(病歷)이 알려지면 도움은커녕 공격대상이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병원을 멀리하다 치료시기를 놓치기도 한다. 김영학 한국정신장애인협회 회장은 “약을 꾸준히 복용하던 환자 중에서도 멸시당하고 사회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서 치료를 거부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대인 관계가 끊긴 환자의 경우엔 심리적 타격도 크다. 인터넷이 외부와의 유일한 소통수단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울증을 앓는 서울의 한 20대 환자의 부모는 “방에서만 생활하는 아이에겐 유머사이트 접속이 유일한 낙인데 임 교수 사고 이후 그곳마저 정신질환자 비하가 등장하면서 우울감이 심해졌다”고 털어놨다.
의료계는 대중의 공포감이 언론의 자극적 범죄사건 보도에 과열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2017년의 대검찰청 범죄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범죄자 가운데 정신장애인의 비율은 0.6%에 그친다. 조현병 환자에 대한 공포가 극심해졌지만 살인·강도 등 강력범죄자 중 조현병 환자는 0.7%에 불과하다. 유병률로 추정한 조현병 환자(50만명)의 0.05% 수준이다. 이해국 가톨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당신이 누군가에게 상해를 당한다면 범인이 정신질환자가 아닐 확률이 13배”라면서 “범죄는 발병 후 첫 치료를 받기 전이나 치료를 받고 있지 않을 때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악플은 이들이 꾸준한 치료를 받게 될 유인을 떨어뜨리고 오히려 범죄 발생 가능성을 높이는 셈이다.
상황은 이렇지만 악플에 대한 규제는 전무한 실정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온라인상의 혐오표현을 삭제하고 있지만, 민원이 접수되면 건건이 심의한 뒤 인터넷 사업자에게 삭제를 권고하는 방식이라 역부족이다. 그나마 포털을 압박해 자율규제를 강화하는게 현실적 대안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유럽처럼 대형 인터넷 사업자들이 악성 댓글을 방치하면 사업을 지속할 수 없다는 경각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면서 “인터넷 구석구석에 혐오표현을 말하는 것까지 일일이 막을 수는 없지만, 최소한 널찍한 광장(포털)에서만큼은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퍼지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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