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형 불패’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통용될 만큼, 그간 부동산 시장에서 작은 평형 아파트는 인기 절정의 투자 아이템이었다. 서울 인기지역에선 소형(전용면적 61㎡ 이하)이나 중소형(61~85㎡) 아파트가 매물로 나오기만 하면 갭투자자와 실수요자가 몰려들어 순식간에 매매가 이뤄지곤 했다.
그러나 최근 부동산 시장 침체에 소형 아파트의 몸값도 하락세를 타고 있다. 정부의 강력한 다주택 보유 규제로 매물이 늘고 수요는 줄어들면서 가격 거품이 빠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가격 하락세가 중소형까지 번질 수 있다는 관측 한편으로 실수요가 떠받치면서 조만간 가격 반등이 이뤄질 것이란 반론도 나온다.
◇소형 매매가 37개월 만에 하락
26일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의 전용면적 40㎡ 미만 아파트의 매매중위가격(매매가격 순으로 나열했을 때 정중앙에 위치하는 값)은 전월(4억1,029만원)보다 21.3% 떨어진 3억2,281만원으로 집계됐다. 2016년 1월(2억4,190만원) 이래 37개월 간 이어졌던 가격 상승 행진이 종료된 것이다. 특히 강남권의 40㎡ 미만 아파트 중위가격은 지난해 12월 5억2,323만원에서 지난달 3억8,174만원으로 27%(1억4,149만원) 급락하며 강북보다 큰 낙폭을 보였다.
서울 아파트의 주간 매매가격(한국감정원 집계)이 지난해 11월 이래 15주 연속 하락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소형 아파트는 뒤늦게 가격이 빠지기 시작한 셈이지만 하락폭은 심상치 않다. 국민은행 집계에서 중대형 아파트(국민은행 기준 95.8㎡ 이상)은 중위가격 하락폭이 1% 수준에 그쳤고, 중소형(40~95.8㎡)은 가격 상승세를 이어갔다.
이는 소형 아파트가 각광을 받아온 그간의 시장 흐름과 사뭇 다르다. 작은 평형대 아파트는 환금성이 뛰어나고 시장 호황 땐 가격 상승폭이 상대적으로 높아 신혼부부, 1인가구 등 실수요자는 물론이고 투자 목적 수요자에게 인기를 끌어왔다. 실제 지난해 아파트 매매시장과 분양시장 호황은 소형 및 중소형이 이끌었다. 전체 아파트 거래량의 87%(소형 33%, 중소형 54%)를 책임졌고, 청약자의 74%가 소형 및 중소형에 몰렸다.

◇보유세 부담ㆍ떨어진 분양가 매력
콧대 높던 소형 아파트의 가격 하락은 정부 규제에 부담을 느낀 다주택 보유자들이 시장에 매물을 내놓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소형 아파트의 경우 임대사업용으로 투자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들이 지난해 9ㆍ13 대책을 비롯한 고강도 대출규제, 공시가격 급등에 따른 세금 증가로 인해 소형 아파트 처분에 나서면서 호가가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주택자의 매물 처분 추세가 확산될 경우 중소형 아파트로 가격 하락 흐름이 번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간 소형 아파트 분양가가 크게 올라 구매 유인이 떨어지고, 이로 인해 소형을 선호하던 실수요자들이 보다 넓은 아파트로 갈아타고 있는 것도 가격 하락 요인으로 꼽힌다. 2014년만 해도 전용면적 85㎡ 초과(3.3㎡당 1,220만원) 중대형 아파트와 전용 61㎡ 이하(887만원) 소형ㆍ중소형 아파트의 평당 분양가 차이는 333만원 정도였지만, 지난해엔 이 차이가 75만원(85㎡ 초과 1,447만원, 60㎡ 이하 1,287만원)으로 크게 줄었다.
양지영 양지영R&C 연구소장은 “소형 아파트 값이 오랫동안 오르면서 가격에 대한 부담이 있는 상태인데다 분양가 역시 중형과 큰 차이가 없어지면서 실수요자들의 소형에 대한 관심이 식어가고 있다”며 “주택임대사업자에 대한 세제 혜택 축소로 투자자들도 빠져나가면서 소형 아파트 가격 하락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각에선 1~2인 가구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부동산 시장이 실수요자 중심으로 재편될 경우 작은 평수의 아파트로의 쏠림 현상이 도로 강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권강수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이사는 “까다로워진 청약제도와 강도 높은 대출규제 등으로 부동산 시장이 실수요자 위주로 재편되면서 소형과 중소형 아파트 강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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